“노망난 박근혜 짝퉁 대통령!”
“노망난 박근혜 짝퉁 대통령!”
“박근혜가 노망이 난 것인가?“
북을 제쳐놓은 5자 회담을 열자!“라는 박근혜의 제언에 접하고 세계 양식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런 탄성을 내지를 법도 하다. 잠잫고 있으면 본전치기는 됐을 것을 의기를 뽐내는 것까지는 갠찮으나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는 핵강국에 대해 놓는 엄포치고는 너무나 자극적이고 황당하지 않은가?. 아무리 문제의식이 빈곤하고 주제파악이 안된 파락호 대통령이기로서니 어찌 이지경으로 저능아일 수 있으랴 싶어 마음이 무거워진다.
대통령이라면 국민에게 믿어운 반석이 돼주어야 할 국가의 기둥이다. 국민이 설령 발끈하는 알레르기성 반응을 나타내고 전전긍긍한다손 쳐도 미동도 하지않고 국민 정서를 순화하고 격앙을 달래는 차원에서 차분히 갈아앉혀 주는 것이 대통령 직분자로서 보호대상인 자국민을 위해 마땅히 수행해야 할 역할이 아닐까?
“아무 걱정마라 당장에 무슨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도 아닌데 웬 후둘갑인가?“ 국민적 지혜를 모아 외교적으로 해결할 터이니 조금도 동요하지 마라!” 라 진득하게 타일러 설령 군부댸에서 강수를 쓰더라도 만류해야 한다. 그런 대통령이 북의 아킬레스건인 대북방송 재개를 명하는 발끈하는 알레르기성 반응을 나타내더니 근자 다시 그같은 망발을 늘어놓고 있으니.....
대통령이 북에 대한 두려움에 떨며 강박관념에 일그러지고 피해망상에 새로잡혀 이성을 잃거나 정신착란에 걸린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불필요하게 북을 자극하여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구민을 불안하게할 것이 무엇인가? 전해져오는 속담에 “빈 수레가 요란하다!”라는 말이 나온다. “쉬 뜨거워지는 방 쉬 식는다!”는 말도 있다.
“통일 대박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휴전선 평화공원론” 박근혜가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면서 줄곧 떠벌이고 입에 달고 다니던 어휘들이다. 언즉시예(言卽是乂)“라더니 얼마나 귀를 근지르는 그럴싸한 미사여구의 나열인가? 그렇다. 통일을 꿈꾸어야 한다. 대통령으로 통일을 꿈꾸지 않으면 그게 무슨 대통령인가? 문제는 그것이 실천이 따르지 않은 입설발매에 그쳤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필자는 이랬다 저랬다 변덕을 부리고 딴죽을 울리는 사람이 선호대상이 되는 사례가 있다고 들은 바가 없다. 그런 까닭에 박근혜의 경거망동과 오두방정을 통 이해할 수가 없다, 그는 지난 대선 당시 전 노인들에게 노령 연금 지급을 약속했다. 자기딴에는 노인들이 자기를 밀어준 것을 고맙게 여겨 보은의 표시로 입에 올린 수사(修辭)였음직도 하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왜 하느냐?“는 반어법(反語法)까
지 구사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세계 많은 나라 국민들은 한 때 전쟁을 치르더라도 휴전이 되거나 평화체제로 전환되고 난 후에는 구원(舊怨)에 사로잡혀 수원수구함이 없이 화해 무드에 젖어 살아간다. 북과는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이념적 갈등 속에서 한때 전쟁을 치렀던 것이 사실이었긴 하다. 그렇더
라도 이미 고희 연도 이전에 일어난 역사적사건에 지나지 않다. 70년의 세월이라면 수원수구를 잊어버리고 오순도순 정을 붙이고 살아도 될 때가 되지 않았는가?. 그리고 중동 나라들과는 생판 다르게 장구한 세월동안 남북 간에 거짓말처럼 평화기조가 유지돼 온 것에도 촉각을 곤두세울 필요가 있다. 악감정을 가지게 되면 미운털이 박히겠지만__
북이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 하여 우리가 집단 따돌림을 하는 등 위해를 가하지만 않는다면 무단히 우리를 공격할 리 만무하다. 자기 안방에 폭탄을 날리는 결과를 가져올 테니 그야 여부조차 없는 말이다. 만약 실재로 그리 믿는 이가 있다면 착각도 유만부동이라 할 것
이다. 그리고 두손을 가슴에 얹고 곰곰이 되새겨 보라! ‘아’ 다르고 ‘어’ 다른 문제로 보아야 한다. 미 일 등이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하더라도 소방수 역할을 해야 할 것은 정한 이치다. 전술 전략상 필요에 비춰 보더라도 신중을 기해야 하련만 박근혜는 하늘 향해 침을 뱉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외교적 실패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전술 전략상 차질“이나‘외교적 실패!”라고 말할 때 우리는 일본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본다. 일본은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나라!”다. 일본의 간교함은. 국력이 쇠잔할 때면 “죽었다!”고 복창하다가도 어쩌다 근육에 함이 불끈 솟기라도 하는 날에는 조선 침략을 다
반지사로 일삼은 수애를 보아도 아니라 말할 수가 없다.
일본은 일년을 통틀어 지진과 해일 태풍 등 천재지변에 시달리지 않는 많은 날을 가지지 못한 지정학적 조건에 콤플렉스를 느꺼온 나라다. 한반도의 징검다리를 건너 아시아로 진출하고 이를 발판삼아 시계를 정복하려는 저들의 기도로 하여 양국관계는 수천번의 왜구를 겪는 등 긴장의 불연속성 속에 갇혀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평화헌법의 기조를 허물고 세계를 향해 강대국으로서의 위세를 뽐내기 시작한 저들에게 대비하여 우리는 무엇인가를 준비해야할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보아여지 않을까? 어쨌든 그럴 필요에 직면하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당장 북의 위협만을 생각하여 과연 하
늘을 향해 침을 뱉아도 될 일인지 곰곰이 헤아려 보아야 할 일이다
독립국가이면서 대북문제에 대해 늘 미국 의존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전시 작전 통제권까지 미국에 넘겨주어야 하는 것인지를 국민에게 물어보아야 한다고 본다, 북핵 문제에 관한 한 미국과 중국이
전수방어 차원에서 서로 입장이 다를 수 있을 터인데 무턱대고 우리와 공동보조를 취하기를 간청하는 등도 내 것도 내것이며 “네 것도 내 것,이라는 구상유취한 외교조련술이 아닌가?
유엔 헌장정신에 입각하여 북을 핵보유국으로 인증하여 호혜평등 정신으로 미 중 일등 나라들이 무어라 불만을 털어놓더라도 북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성숙시키는 일에
주력하는 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되풀이하는 강조로도 도리어 모자라
다고 본다. 이것이야 말로 한국 대통령이 수행해야할 역할이어야 했을 터이다. 백마디 미사여구의 나열보다 이런 도덕적 이니셔팁에 북
은 깊은 강동을 받을 것이라는데 이론의 여지가 있을까?
한석현 글 <북을 젖혀둔 5자 회담이라고라!!> 2016. 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