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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郡山水

peppuppy(깡쌤) 2021. 5. 30. 14:01

 四郡山水

 

사군(四郡)은 충북의 청풍·단양·제천, 강원도의 영월을 가리킨다. 이 네 고을은 서로 붙어있다시피 한데, 산수가 특별히 아름답다. 그래서 조선 시대 내로라하는 강호의 방랑자와 시인들은 이 네 고을의 산수를 ‘사군산수’라고 특별하게 불렀다. 대부분의 산들이 바위산들인 데다가 그 산들의 주변을 남한강이 끼고 흘러가고 있다.

청풍문화재단지 내에 있는 한벽루. 원래 청풍면 소재지에 있었으나 충주땜이 생기면서 물이 들어차자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조선일보DB

 

바위와 물은 찰떡궁합이다. 바위산에서는 화기가 뿜어져 나오고, 강물에서는 수기가 이 화기를 중화시켜 주고 있다. 충주호 댐 가운데에 있는 청풍의 한벽루(寒碧樓). 누각에 앉아서 주변 산세와 물세를 바라다보니까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향 산천에 안겨 있는 것만 같다. ‘우리 땅 조선 강산이 이렇게 좋은데 뭐가 그리 바쁘다고 이 풍광을 놓치고 살았단 말인가!’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먹고산다고 부박(浮薄)해진 내 마음에다 치료 연고를 발라주는 것만 같은 산세이다.

수백 년 전에 다녀갔던 이 땅의 선배들도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살아 온 반평생 산수를 등진 게 부끄러워라(半生堪愧北山靈)’. 퇴계 선생이 한벽루에 하루 묵으면서 쓴 시 구절이다. 퇴계가 걸어갔던 청풍에서 단양 향교까지 10㎞의 봄 길을 걸어보니 주변 산들이 도끼로 탁탁 잘라 놓은 듯한 바위 암벽들이다. ‘인생 그리 길지 않으니까 늦기 전에 어서 산으로 들어오라’고 충고를 한다. 단양 군수 시절의 퇴계 시 한 구절이 또 가슴을 친다. ‘청산을 거닐 때는 구름에 깃든 학처럼 살고 싶었고(在山願爲棲雲鶴)’. 그까짓 거 별것도 아닌 벼슬한다고 종종걸음 하고 산다는 한탄이다. 같은 풍광이라도 자기 처지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게 인생이다.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은 스승인 수운이 처형당하기 전에 건네받은 쪽지가 ‘고비원주(高飛遠走)’. 이후로 해월은 평생 도망 다니면서 살았다. 대략 35년. 보따리 하나 들고 끊임없이 도피처를 궁리해야만 하는 탈주자의 신세였다. 해월이 도망 다닐 때 가장 많이 숨었던 공간이 이 사군산수 일대이다. 이 지역이 산골 깊숙한 오지여서 숨기에도 좋았을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충청도, 강원도, 경상도의 접경 지대여서 월경(越境)을 하기에 좋았다. 예를 들어 경상도 추적대는 해월이 충청도 땅으로 월경해 버리면 추적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2년도 아니고 30년 넘게 이런 도망자 생활을 했으니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나도 남은 인생을 생각해 본다.

 

조용헌 (趙龍憲)  ; [現] 건국대 석좌교수.  강호동양학연구소 소장

 

구마사(驅魔師)

 

구마사(驅魔師)의 ‘驅’자는 ‘몰아내다’는 뜻인데, 흔하게 쓰는 표현은 아니다. 퇴마사(退魔師)라는 뜻과 같다. 세계 어느 문화권이든지 마귀와 악령을 쫓아내거나 몰아내는 주특기를 가진 직책이 있었다. 질병이나 집안의 우환이 이러한 악령들의 작용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70년대 중반에 개봉되었던 ‘엑소시스트(Exorcist)’라는 영화가 필자의 인상에 깊게 남아 있다. 악령과 사투를 벌이는 구마사제의 역할이 나온다. 영화감독은 이 장면을 찍기 위해서 로마교황청의 이 분야 전문가에게 조언을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백제 때 이미 주금사(呪噤師)가 활동했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서기’에는 백제에서 일본에 주금사를 파견했다고 나온다. 주금사는 주문(呪文)을 외워 마귀를 쫓는 역할이다. 이건 전문 분야이니까 따로 훈련받은 인력이 필요하다. 고려시대에도 국가기관에서 이 주금사에게 직책을 주고 연봉을 주었다. 그만큼 필요하다고 인식하였다는 말이다. 국가공무원으로 대접하고 연봉까지 지급하였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귀의 세계가 있고, 주술이라는 게 효과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그렇다면 어떤 주문을 외워야 구마사의 파워를 얻는 것일까? ‘옥추경(玉樞經)’이다. 조선의 도사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전문가용 주문 경전이다. 바위 암반에 둘러싸인 산신각에서 100일 동안, 하루에 3번 ‘옥추경'의 주문을 외운다. 대개 산신각은 불교 사찰에서 가장 기가 센 터에 자리 잡기 마련이다. 암반 위에 터를 잡는 수가 많다.

 

주문 암송은 천둥번개신[雷電神]에게 마귀를 쫓는 힘을 달라고 비는 행위이다. 경험담에 따르면 주문을 외운 지 일주일쯤 지나면 귀에서 벌의 ‘웅-웅’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3주째가 되면 매미 우는 소리가 들린다. 7주째가 되면 폭포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여기까지는 보통 사람도 견딜 만하다. 마지막 단계가 되면 귀에서 천둥 번개 치는 소리가 들린다. 이 소리를 듣는 단계에서 엄청난 공포심이 느껴진다. 천둥 소리를 견디면 구마사의 자격을 획득하지만 견디지 못하면 탈락한다. 심하게 탈락하면 정신이상이 오거나 병이 든다.

아는 후배 한 명도 이거 외우다가 겁이 나서 중단한 적이 있다. 천둥소리의 공포를 버텨내고 100일 동안 ‘옥추경' 주문을 달성하면 마귀를 몰아내는 초능력을 얻는다고 한다. 천둥번개신이 마귀의 뼈까지 녹여 버린다고 일컬어진다. 한국은 화강암 산이 많아서 주문의 전통이 매우 깊다.

 

조용헌 (趙龍憲)  ; [現] 건국대 석좌교수.  강호동양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