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언어의 연금술사’인 시인들이 그러하듯이 김수영은 언어에 민감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시어에 대한 자의식이 깊었다. 그는 산문 ‘시작 노우트’에 “나는 언어에 밀착했다. 언어와 나 사이에는 한 치의 틈사리도 없다”고 적었다. 또 “인간 사회의 진정한 새로운 지식이 담겨 있는 언어를 발굴하는 임무를 문학하는 사람들이 이행하지 못하는 나라는 멸망하는 나라다”(‘히프레스 문학론’)라고도 했다.
1966년 김수영은 한 수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를 적시했다. 마수걸이, 에누리, 색주가, 은근짜, 군것질, 총채, 글방, 서산대, 부싯돌, 벼룻돌. 시인으로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였지만, 그가 손꼽은 우리말은 조탁한 시적 언어가 아니라 몸에 밴 토착어였다. 김수영은 “아버지가 상인이라 어려서 서울의 아래대의 장사꾼의 말들을 자연히 많이 배웠다”며 장사치들의 말을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로 내세웠다. 반세기 뒤 언론인이자 언어학자인 고종석이 김수영을 흉내내 골라낸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가시내, 서리서리, 그리움, 저절로, 설레다, 짠하다, 아내, 가을, 넋, 술) 역시 삶의 언어들이었다.
우리말은 아름답다. 김소진의 소설 ‘고아떤 뺑덕어멈’에서는 ‘자발머리없다’ ‘두억시니’ ‘몸태질’과 같은 희귀 어휘를 만날 수 있다. 작가가 국어사전을 통독하며 찾아낸 아름다운 어휘들이다. 윤흥길의 ‘장마’를 읽으면 ‘되알지다’ ‘애오라지’ ‘뜨적뜨적’과 같은 토착어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나 아름다운 말은 문학작품에만 있는 게 아니다. 하하, 헤헤, 호호는 모두 웃음소리지만 뜻이 조금씩 다르다. 푸른, 강, 산이란 어휘에서는 우리 산하가 눈에 들어온다. 어머니, 누나, 오빠 등 가족 호칭어만큼 아름다운 우리말도 있을까.
세종학당재단이 574돌 한글날을 맞아 외국인을 대상으로 ‘내가 사랑하는 한글 단어’를 조사한 결과 ‘사랑’ ‘힘내·괜찮아’ ‘봄·꽃·하늘’ 순으로 나타났다. 가온누리, 미쁘다, 비나리하다 등 다소 어려운 순우리말을 든 외국인도 있었다. 우리말이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는 증거다. 한글은 빼어난 기록 유산이다. 각자 김수영 시인처럼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를 꼽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