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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길

peppuppy(깡쌤) 2014. 8. 22. 17:55

 

★고난의 길

예루살렘 올드 시티 안에 ‘십자가의 길’이 있다. 라틴어로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슬픔의 길’ ‘고난의 길’이라는 뜻이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 언덕까지 채찍을 맞아가며 걸어간 길이다. 예수 생애 마지막을 그린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그 장면이 생생하게 나온다. 중죄인을 못박아 죽이던 십자가는 예수 처형 후 그리스도교의 상징이자 예배의 대상이 됐다. 세월이 흐르면서 인류 구원을 위한 희생의 제단, 또는 죽음과 지옥에 대한 승리의 징표로 승화돼 전 세계로 전해졌다.

1631년 정두원이 명나라에서 천주교 서적을 가져왔다는 것이 이 땅의 천주교 최초 기록이다. 초기에는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를 통해 ‘서학(西學)’이라는 학문으로 전래됐다. 십자가는 1784년 이승훈이 베이징에서 들여왔다. 하지만 곧이어 천주교 박해가 일어나면서 수많은 순교자가 나왔다. 초대교회 순교자들도 예수가 걸었던 십자가의 길을 그대로 따라갔다.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목숨을 믿음과 바꿨다. 순교자들이 십자가에 흘린 피는 한국 천주교회의 씨앗이 됐다. 그 순교자들 가운데 103명은 1984년 성인에 올랐다. 124명은 오늘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광화문광장 시복식에서 복자가 된다.

★[여적]안산의 프란치스코           -김민아 논설위원- 

 이탈리아의 여름은 두 얼굴을 갖고 있다. 맑은 날씨와 천혜의 경관은 찬란한 문화유산과 더불어 전 세계인을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반면 4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 엄청난 인파, 살인적 물가는 감내해야 할 몫이다. 로마나 피렌체 같은 유명 관광지에서 지쳐버린 여행객은 ‘고요함’으로의 탈주를 꿈꾸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향하는 곳이 움브리아주의 소도시 아시시다. 아시시는 로마와 피렌체에서 멀지 않지만, 완연히 다른 세계다. 중세의 향기를 그대로 간직한 마을은 조용하고 차분하다. 소박하며 평화롭다. 여행자들은 여기서 새로운 여정을 향한 힘을 얻어간다.

아시시만의 독특한 분위기는 ‘빈자의 성인’ 프란치스코에서 비롯한 바가 크다. 12세기 후반 아시시에서 태어난 성 프란치스코는 부잣집 아들로 방탕한 청년기를 보내다 어느 날 신앙에 눈을 떴다. 이후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청빈한 수도자의 길을 걸으며 평화의 복음을 전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로 시작되는 ‘평화의 기도’는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해 새 교황으로 선출된 아르헨티나 출신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역사상 처음 프란치스코를 교황명으로 선택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교회, 평화를 만드는 교회를 추구하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자 공개적 선언이었다.

한국을 찾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프란치스코’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닮았다. 특급 호텔 대신 주한 교황청대사관 내 6평 크기 숙소에 묵고, 리무진 대신 한국산 소형차 쏘울을 타고 다니며, 젊은이들과 대학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낮지만 강력한 청빈의 메시지다. 어제는 세월호 참사로 숨진 안산 단원고생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에게 세례를 줬다. 교리 공부를 다 마치지 않은 상태였지만 흔쾌히 세례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씨는 교황과 같은 프란치스코를 세례명으로 정했다. 이제 그는 ‘안산의 프란치스코’로 살아가게 된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처럼, 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프란치스코처럼 그도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