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ppuppy(깡쌤) 2014. 11. 8. 16:55

롬멜

올해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70주년이기도 하거니와, 이를 막을 수 없었던 나치독일의 에르빈 요하네스 오이겐 롬멜(1891. 11.15~1944.10.14) 원수의 서거 70주년이다

그가 단순히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비결을 아는 군인에 머문 것이 아니라, 무인으로서의 독특한 자질,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정치적 식견, 한 가정을 지키는 남자로서의 복합적인 덕목을 고루 갖춘 훌륭한 지성인이었다.


그는 ‘사막의 여우’란 별칭이 붙었던 북아프리카 사막전 이전에 이미 독일군과 연합군 내에서 경악할 만한 전과를 기록했었다. 프랑스를 눈 깜짝할 새에 격파했던 서방전격전에서 제7 장갑사단을 지휘했던 그는 적군도 아군도 그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할 정도의 신출귀몰한 기동력을 발휘해 ‘유령사단’이란 별명을 얻었다.

42년 초에는 아프리카 가자라 지역으로 진출하여 6월 21일 끈질기게 버티던 토브룩 요새를 함락시킴으로써 독일 최연소 원수에 등극한다. 이때가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 최절정기였다. 처칠 수상마저 "적장이지만 존경을 표한다"는 유명한 구절을 남겼던 바로 그 대목이다.
하나 그는 원수 계급장보다 좀 더 많은 전차와 연료를 공급해 주는 편이 낫다고 했다.

 
롬멜은 그해 7월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에 연관됐다는 건으로 말미암아 이른바 불고지죄를 적용받게 되자, 히틀러는 마침내 잔인한 결정을 내린다. 롬멜이 히틀러에 의해 살해당했다.


롬멜은 단순히 뛰어난 전략가나 전술가라는 군사적 평가를 넘어, 조국에 대한 애정과 부하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 치열한 전장 가운데에서도 틈날 때마다 자신의 가족에게 보낸 진중한 서신을 통해 그가 얼마나 참된 인간상인지 엿보게 한다.

롬멜은 그 누구보다도 최전방에 직접 나가 진두지휘하면서 전황을 올바르게 판단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때문에 장군의 계급에 어울리지 않게 무수히 많은 부상을 당했으며 그의 이 같은 위험천만한 행동은 독일 수뇌부에서조차 군사교범을 어기는 일이라고 비판받은 바 있다. 롬멜의 기개와 강심장은 44년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직전에도 화제가 됐다. 위력정찰을 실시하던 영군 전투기가 해안을 시찰하던 롬멜 일행에게 기총사격을 가했을 때였다. 모든 부하들이 지면에 신속히 엎드렸지만 롬멜 혼자 꼿꼿하게 서서 전투기의 진행 방향을 응시했다고 한다.

롬멜에게 독약을 마시게 한 히틀러가 롬멜의 사망 소식을 롬멜 부인에게 전화로 전하면서, 베를린 광장에 롬멜 장군을 기리기 위해 사자상을 제작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히틀러는 도약하는 사자, 포효하는 사자, 잠자는 사자 중 어떤 디자인을 원하느냐고 물었던 모양이다.

 때 롬멜의 부인이자 만프레드의 어머니는 "통곡하는 사자를 만들어 달라"고 대꾸했다고 한다. 히틀러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고스란히 담긴 처절한 답변이었다. 히틀러는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었고, 이후 그에 대한 장엄한 국장은 치루어졌지만 결국 사자상은 세워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