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준공 40주년을 맞는 다음달 1일 ‘국민초청 기념음악회’를 열고 ‘국회의원 단체 기념사진’도 촬영할 계획이다.
1975년 9월1일 준공된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원자재·자본 조달, 설계 등 전 과정을 우리 힘으로 해낸 아시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의사당이다.
의사당을 떠받치는 24개의 기둥은 1년 24절기 내내 국정에 진력하라는 의미다.
본회의장 천장 조명은 365개로 알려져 있는데 1년 365일 내내 일하라는 뜻이다.
국회의사당에는 이밖에도 ‘알 만한 사람은 알지만 널리 알려지지는 않은’ 비사들이 꽤 숨어있다.
국회의사당에 숨겨진 흥미로운 몇 가지 이야기를 들여다 보자.

1969년 7월에 착공, 연건평 2만4680평 지하2층, 지상6층 석조 돔 건물로 총 공사비 135억원(1975년 당시)이 든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준공된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음기 누르는 7m 남근석은 어디에?
2008년 4월 국회 사무처는 국회 개원 60주년을 맞아 의사당 후문 앞에 ‘국민과 함께하는 민의의 전당’이란 문구가 새겨진 간판석을 세웠다.
높이가 무려 7m에 달한다.
하단 폭은 2.6m, 상단 폭 2.2m이고, 무게는 68t이 넘는 초대형 비석이다.

“여의도는 조선 시대 궁녀들의 화장터로 음기가 센 곳이어서 정쟁이 끊이지 않는다. 이 음기를 누르기 위해 남근석을 가져다 놓은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국회 내 남근석은 음기를 누르는 것이 아닌, 배를 묶어놓는 ‘닻’으로 해석하는 게 옳다”는 이설도 나왔다.
여의도의 형상이 배가 떠나가는 행주(行舟)이기 때문에, 배가 풍랑을 만나 조난을 겪듯 정치권이 시끄럽다는 게 한 풍수학자의 해석이었다.
이 거대한 비석을 닻으로 삼아 ‘여의도 배’를 떠나니지 못하도록 하자는 뜻으로 거석(巨石)을 세워놓았다는 설명이다.
아무튼 2억1000만원의 예산이 들어간 이 거석은 세워진 지 1년 만에 철거돼 인적이 드문 헌정기념관 뒤 공터로 옮겨졌다.
17대 국회에서 이 간판석을 설치했던 김태랑 사무총장은 열린우리당 출신이었다.
18대 국회 들어 사무총장은 한나라당 출신 박계동 전 의원이 맡았다.
간판석을 치운 건 박계동 총장이었다.
의회 권력이 바뀌자 간판석의 운명도 바뀐 것이다.

■기다림의 아이콘 ‘박근혜송(松)’
국회 정문 주변에는 ‘기다림의 나무’로 불리는 소나무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04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서울 염창동 당사에 심었다가 2008년 국회의사당 경내로 옮겨진 소나무/뉴시스
2008년 한나라당이 여의도로 당사를 옮기면서 자리를 찾지 못해 국회로 옮겨졌다.
처음에는 국회 의원회관 동산에 심었다가, 제2의원회관 건립으로 역대 국회의장, 사무총장들의 기념식수와 함께 현재의 자리로 옮겨진 것으로 전해진다.
■‘비긋기’용 비밀통로도 있다?
국회에는 지하 비밀통로가 있다.
본회의가 열리는 의사당에서 시작돼 왼쪽에 위치한 의원회관과 오른쪽에 위치한 도서관을 연결하는 지하 통로다.
‘T자’를 거꾸로 한 형태다.
1984년 국회도서관을 신축할 때 설계됐다.
길이는 460m에 이른다.
비상시 대피장소로 만들어졌지만 비가 올 때 비를 맞지 않고 이동하는 용도로 주로 쓰인다.
벽면에는 역대 국회의원들이 직접 쓰거나 기증한 서예 작품과 사진들이 걸려 있다.
일반인의 이용은 제한돼 있다.
■동물원도 있었다는데…
한때 국회 후생관과 온실 사이에는 ‘미니동물원’이 있었다.
일종의 사육장인데 닭은 물론 사슴과 꿩까지 길렀다.
그런데 18대 국회 때 국회 사무처 국정감사에서 이 사육장이 문제가 됐다.
사무처가 사슴 녹용을 특정업체에 주기로 수의계약한 사실이 불거진 것이다.
특혜 시비가 일면서 결국 사육장은 없어졌다.
졸지에 집을 잃은 동물들은 서울대공원으로 보내졌다.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