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호갱이란다
우리정부와 우리들이 호갱(호구 고객의 은어)이라?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유명한 프라다는 ‘지적이면서 독립심이 강한 여성의 이미지’를 가진 이탈리아의 고가 패션 브랜드다. 프라다가 한국에 직접 진출한 것은1995년 말이다. 이때만 해도 프라다가 겨냥한 고객층은 한국인이 아니라 한국의 면세점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들이었다. 1990년대 말 한국 상류층의 사치품 수요가 급증하자 프라다는 내수시장으로 눈을 돌린다. 한국시장이 얼마나 황금어장이었는지는 프라다코리아의 재무제표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1999년 이후 16년간 영업적자를 낸 것은 2006년이 유일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한국 내수기업들은 실적이 곤두박질쳤지만 프라다는 예외였다.
2010년 이후 5년간 프라다코리아는 한국시장에서 총 1조4524억 원의 매출을 올려 3382억 원을 영업이익으로 남겼다. 영업이익률로 치면 23.3%. 2014년 한국 100대 상장사
영업이익률(5.3%)의 4.4배에 이르는 수치다.
또 5년간 프라다코리아가 모회사에 배당한 돈은 1961억 원에 이른다.
한국시장에서 이렇게 ‘단물’을 빨아먹은 프라다가 한국에서 기부한 돈은 얼마나 될까. 재무제표로 보면 5년간 3218만 원이다. 매출액의 0.0022%다.
프라다코리아의 연평균 매출을 100만 원이라고 친다면, 23만2848원을 영업이익으로 남겨서, 13만5051원을 모회
사에 배당했고 22원을 기부금으로 낸 셈이다.
프라다뿐만이 아니다. 사회공헌에 인색하면서 모회사로 돈 빼내기에 급급한 행태는 대부분의 명품업체가 갖고 있는 공통점이다. 한국시장에서 수백억, 수천억 원의 영업이익
을 남기면서 기부금을 땡전 한 푼 내지 않는 곳도 수두룩하다.
명품업계에서 한국인들이 ‘글로벌 호갱(호구 고객이라는 뜻의 은어)’으로 통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한국소비자원이 명품 가방류 50개의 가격을 분석했더니, 한국
에서 팔리는 제품의 가격을 100이라고 했을 때 주요 선진
국에서 팔리는 제품의 가격은 70.5에 불과했다.
한국 소비자들에게 평균적으로 30%가량 바가지를 씌운다는 이야기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팔리는 것과 똑같은 제품
이 한국시장으로 들어올 때 가격이 2배, 3배로 뻥튀기 되는 사례도 흔하다.
명품업체들이 호구로 여기는 것은 한국의 소비자들뿐만이 아니다. 정부도 ‘핫바지’로 안다. 8월 정부가 소비를 활성화
하기 위해 개별소비세를 깎아주자, 명품업체들은 오히려 가격을 올려 인상분과 세금감면액을 이중으로 챙겼다.
아무리 콧대가 높은 기업도 정부는 무서워하는 것이 세계적인 상례인데, 한국에서만은 예외인 것이다.
해외 명품업체들의 속물근성과 오만한 버르장머리를 고치려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
첫째, 한국소비자원은 명품업체들이 한국 소비자들에게 얼마나 바가지를 씌우는지를 더 자주, 더 상세히 조사해서 공개해야 한다.
둘째, 유한회사도 외부감사를 받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루이뷔통 구치 샤넬 등 대부분의 명품업체들이, 주식회사가 아닌 유한회사는 외부감사를 받지 않아도 되는 법
규정을 이용해, 한국에서 얼마나 이익을 남기고 사회공헌은 얼마나 하는지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국세청이 명품업체들의 세금 납부 실태를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 개별소비세 소동에서 보여준 행태로 볼 때 명품업체들이 법인세 등 다른 세금은 제대로 내는지, 의심을 지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내기업에는 호랑이처럼 굴면서 해외 명품업체들에 핫바지 노릇을 하는 것은 국민적인 자존심이 더이상 용납하지 않는다.
천광암 동아일보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