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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와 규장각

peppuppy(깡쌤) 2019. 11. 10. 20:39

정조와 규장각

 

낙엽을 책갈피로 꽂아둘 수 있는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책을 가까이하기 좋은 날씨가 계속된다. 조선의 왕 중 책과 가장 많이 관련된 인물은 누구일까. 집현전을 창설한 세종도 책을 좋아한 왕이지만, 정조는 왕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개인 저술 100책인 ‘홍재전서’를 남길 만큼 책과 각별한 인연을 가진 왕이다.

규장각(奎章閣·사진)은 도서 연구와 학문을 바탕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는 정조의 이념이 압축적으로 표출된 공간이었다. 정조는 왕위에 오르기 전 경희궁에서 15년을 지내다가 즉위 후 거처를 창덕궁으로 옮겼다. 그리고 창덕궁에서 경관이 가장 아름다운 영화당 옆의 언덕을 골라 2층 누각을 짓고 어필로 ‘주합루(宙合樓)’라고 현판을 달았다. 1층은 어제존각(御製尊閣)이라 하여 역대 선왕이 남긴 어제, 어필 등과 다양한 책을 보관하게 하고 ‘규장각’이라 했다. 정조는 당파나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젊고 참신하며 능력 있는 인재를 규장각으로 불러 모았다. 정약용을 비롯해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이 규장각을 중심으로 연구 활동을 하면서 정조의 파트너가 됐다.

문화중흥을 이끌어 가는 두뇌집단의 산실, 규장각의 주요한 업무는 수집된 책을 정리,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옛것을 모범 삼아 새것을 창출한다)’은 규장각 설립 취지에 가장 부합되는 정신이었다. 정조는 규장각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해 아무리 관직이 높은 신하라도 함부로 규장각에 들어올 수 없게 함으로써 외부의 간섭을 배제했다. ‘객래불기(客來不起:손님이 와도 일어나지 말아라)’와 같은 현판을 직접 내려 규장각 신하들이 학문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때로는 왕 자신이 학자들과 날이 새도록 학문에 대한 토론을 했다. 세종이 집현전을 설치해 학문의 전당으로 삼은 것처럼, 정조는 규장각을 통해 학문에 바탕을 둔 개혁정치를 펼쳐 나갔다. 독서의 계절 가을에 규장각을 찾아 책을 사랑한 왕 정조의 향기를 접해 보았으면 한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