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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부와 무신의 난 - 오병수박희

peppuppy(깡쌤) 2014. 7. 31. 18:18

정중부와 무신의 난 -오병수박희

 

고려 의종은 재위 1(1147)에 정중부가 궁궐 문을 무단으로 출입한 일이 적발되어 처벌될 위기에 처했을 때도 이를 불문에 부치게 했다. 운명의 날, 보현원에서 오병수박희를 열었던 까닭도 본래 무신의 노고를 위로하려는 것이었다. 그 실 고려조의 가장 태평성대의 시절인 때라 왕실과 문관들은 날마다 주연을 배풀며 향락으로 지샜었다. 의종은 은연 중 왕권을 강화를 위해 많은 호위무사들을 둔 채 두둔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고위직에 오를 수 없는 무신의 처지에 불만인데 힘은 한껏 커져 있으니 다른 생각이 드는 게 자연스러웠다. 당시의 정치에 대한 백성의 불만이 커질 대로 커져 있는 점도 유리하다 여겨졌다. 여기에 의종 21(1167)에 일어난 화살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왕의 행차 도중 좌승선 김돈중(김부식의 자)의 말이 잘못 어느 무사의 말과 충돌했고, 그 바람에 화살통에서 날아간 화살 한 대가 왕의 가마 옆에 떨어졌던 것이다. 왕은 이를 암살 미수 사건으로 알고 충격에 빠졌고, 후환이 두려운 김돈중은 입을 닫아버렸다. 그래서 화살을 날린 자를 찾느라 한동안 벌집 쑤시듯 했는데, 성과가 없자 왕의 호위에 소홀했다.’라는 이유로 견룡순검지유들 중 14명을 귀양 보내는 조치를 했다. 이는 정중부 등에게 지금은 왕이 우리를 아낀다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라는 불안을 심어주었고, 여기에 그칠 줄 모르는 왕의 나들이를 호위하는 병력이 늘게 되자 병사들이 먹을 밥이나 잘 숙소가 모자라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불만이 치솟기 시작했다. 이제 쿠데타까지는 한 걸음이었다.

 보현원의 깊은 밤, 마침내 터져버린 무신의 불만

이때 왕이 시도 때도 없이 나들이를 하면서 경치 좋은 곳에 이를 때마다 행차를 멈추고 가까이 총애하는 신하들과 술과 글에 취하여 떠날 줄을 모르니, 호종하던 장군과 군사들의 피곤이 극에 달했다. 대장군 정중부가 소변을 보러 나가자, 견룡행수 이의방 이고가 따라가 은밀히 정중부에게 말했다. “문신들은 득의양양하게 취하고 배부르게 먹고 있는데 우리 무신들은 굶주리고 피곤하오. 이를 더는 어찌 참겠소?” 정중부도 일찍이 김돈중에게 수염을 그슬린 유감이 있던 터라, 마침내 흉계를 꾸몄다. ([고려사] 의종 24)

 그 해 8, 의종은 흥왕사로 행차했다. 정중부는 이의방과 이고에게 때가 왔다. 다만 흥왕사에서 환궁하면 다음 기회를 노리고, 보현원으로 옮겨간다면 일을 벌이자.”라고 말했다. 의종은 무신들을 위로한다며 오병수박희, 즉 맨몸으로 벌이는 권법 경기를 열게 했는데 대장군 이소응이 젊은 사람과 겨루어 패배했다. 그러자 왕의 총신 중 하나였던 한뢰가 형편없기는, 네가 무슨 대장군이냐라며 이소응의 뺨을 때렸다. 왕과 주변의 신하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이때 정중부가 앞으로 나서며 이소응은 무신이나 벼슬이 3품인데 어찌 이리 심한 모욕을 주느냐!”라고 외쳤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의종은 정중부를 가까이 오게 해서 손을 잡고 달랬다. 이 때 이고는 칼을 빼고 당장 일을 벌이려 들었으나, 정중부가 얼른 말렸다.

 이로써 장군부터 병사까지 더는 못 참겠다.’라는 마음이 끓어 넘치는 상황이 되자 그날 밤, 침내 무신정변은 시작되었다. 왕의 행차가 보현원에 가까이 갔을 때 이고와 이의방이 왕의 지시라고 속여 호위하는 순검들을 물러나게 하고는, 직속 병력인 견룡을 동원해 한뢰임종식이복기이세통 등 왕을 수행하던 문신과 환관들을 사정없이 쳐죽였다. 이때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머리에 쓴 복두를 벗는 것으로 같은 편임을 표시했기 때문에, 그런 차림을 하지 않은 자까지 잘못 죽은 경우가 많았다. 김돈중은 재빨리 도망쳤는데, 만약 개경으로 돌아가 태자를 내세우며 진압군을 동원했다면 쿠데타 세력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감악산으로 들어가 숨었고(나중에 잡혀 죽었다.), 정중부 등은 개경에 잠입하여 숙직하던 관료들을 모조리 죽이고 태자를 사로잡아 대세를 장악했다.

정중부 등은 얼마 뒤 의종은 거제도로, 태자는 진도로 유배 보냈으며 태손은 살해했다. 그리고 의종의 동생인 익양공 왕호를 왕위에 앉히니, 이가 명종이다. 이후 정중부이의방이고 세 사람은 스스로 신하의 최대 명예인 벽상공신에 오르고, 장군직과 문관 고위직을 겸하여 나라를 다스렸다. “무인천하가 열린 것이다.

 삼두정치에서 정중부의 독재까지

황해도 해주 출신이며, 보통 병졸이었다가 군공으로 차차 승진해 대장군(상장군이었다고도 한다.)까지 되어 있던 정중부는 이때 65.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의방·이고보다는 상당히 연장자였던 것 같으며, 그래서 그런지 두 사람에 비해 신중하고 온건한 편이었다. 수박희 현장에서 곧바로 일을 벌이려던 이고를 말린 것도, “문신이란 놈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죽여버리자.”라는 주장을 억제한 것도 정중부였다. 그런데 보통 이 정변을 정중부의 난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이의방과 이고가 주역이고 정중부는 따라가는 입장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구체적인 거사를 처음 제의한 사람이 그들이었고, 쿠데타의 주력인 견룡을 이끌던 사람은 이의방이었으며, 정변 후 1년 뒤에는 이의방이 이고를 제거하고 사실상 일인자로 행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정중부의 신중함과 온건함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고 그가 마냥 뒷전에 만족하고 있지는 않았다. 우선 이고의 죽음 후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겠다고 하고는(그러자 이의방은 정중부의 집에 찾아가 앞으로 아버지처럼 모시겠다.”라고 해서 은퇴를 철회시켰다고 한다.) 아들 정균과 함께 또 다른 거사를 준비했다. 명종 3(1173)에 동북면병마사 김보당이 의종 복위를 내걸고 반란을 일으키고(이 때문에 유배되어 있던 의종은 결국 무신정권에 의해 살해된다.), 다시 이듬해에는 서경에서 서경유수 조위총이 반란을 일으키는 사태가 이어지자 이의방의 리더십에 대한 의심이 불거졌다. 더욱이 이의방은 자신을 반대하는 승려들을 학살하고 절들을 불사르는가 하면 하급 무인들의 처우를 개선하지 않는 등 원성을 많이 샀다. 이를 틈타 정중부는 명종 4(1174) 12월에 이의방을 암살하고는 마침내 일인자로 떠올랐다.

무신정권이 가진 한계가 드러나

정중부는 이의방을 죽인 직후 문하시중이 되어 종래 문관의 최고 지위를 차지했으나, 나이가 이미 칠십에 이르러 있었기에 이듬해에 표면적으로 은퇴하고는 아들 정균과 사위 송유인(그는 정중부와 비슷한 연배의 대장군이다. 본래 유력한 문신의 딸과 혼인해 출세했으나, 무신정변이 일어나자 그녀를 버리고 정중부의 사위가 되었다.)을 내세워 막후에서 권력을 행사했다. 정중부정균송유인 등은 의종이 건설했던 궁궐들을 하나씩 차지하여 집으로 삼는 등 안하무인인 점도 있었으나, 대체로 온건한 정치를 했으며 왕실 및 문신들과도 화해하려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명종에게 어느 정도의 권한을 보장해 주었고, 정변 이래 유명무실해져 있던 과거를 제대로 시행하여 한때 무신 일색이던 조정에 다시 문신들이 넘치게 되었다.

사실 정중부 시대에는 고위 무신들의 협의기구였던 중방(重房)이 사실상의 최고 권력기관이 되기는 했으나, 예전의 관제는 기본적으로 유지되었으며 이의방이나 정중부도 최고 무관으로서가 아니라 문관의 대표로서 권한을 행사했다.

정중부와 무신정변이 가진 의미

정중부와 무신정변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이를 계기로 문신, 그것도 특정 문벌에 국한되어 있던 고위직에 새로 물갈이가 이루어진 점은 분명하다. 또한 정중부 이후 무신정권은 자신들의 지지세력을 늘리고자 평민이나 천민 중에서도 관료를 많이 임용했다. 하지만 그들의 쿠데타에는 단순한 정권장악 외에 어떤 비전이 없었다. “국왕의 폭정을 종식하고, 참된 신앙의 나라를 만든다.”라는 올리버 크롬웰과는 달랐던 것이다.

 그리하여 전체적으로는 무신정권 동안에 백성의 고통과 신분에 따른 차별은 개선되지 않았다. 무인이 정권을 잡았음에도 고구려처럼 상무(尙武)에 입각한 국가를 만들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으며, 국방력이 전보다 더 튼튼해지지도 않았다. 이후 몽골이 침공해 왔을 때, 앞장서서 싸우며 나라를 지킨 무신정권의 주역은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 최씨 무신정권이 왕실과 함께 강화도에 들어가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동안, 본토에서 몽골군과 필사적으로 싸웠던 사람들은 평범한 민초들이었다.

 

[출처] 정중부 (不滅星(불멸의 별)) |작성자 우담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