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1945년, 역사가 낳은 야만

peppuppy(깡쌤) 2016. 2. 2. 11:03

1945년, 역사가 낳은 야만

                                      

이안 부르마의 <0년-현대의 탄생, 1945년의 세계사>  

                   

빅뱅에 관심갖는 이유는 태초의 미스터리를 풀면 오늘의 우주가 보이기 때문이다. '응답하라 1945'가필요한 이유 또한 오늘을 알려면 1945년을 독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해 미국은 명실상부한 패권국(hegemon)으로 등극했다.

미국이 패권국을 계속 남으려면 제2차세계대전이 낳은 1945년 상황이 재현되는 것을 막아야한다.

이안 부르마(65) 바디칼리지 석좌교수가 그리는 당시 상황은 이렇다. 5000만명에서 7000만명에 이르는 인명이 희생된 전쟁을 대체한 것은 절망과 복수심, 위선과 속임수였다. 어디나 사정은 비슷햇다. 사람들은 비슷한 환경에 비슷하게 반응햇다. 문명이나 문화의 차이는 행동의 차이를 낳지 않았다. 승전국이나 패전국이나 사람들은 배고팠다. 만주국에서 살던 일본 민간인 중 1만1000명이 귀국하지 못하고 살해되거나 자살했다. 동부유럽에서 추방된 1000만명의 독일인들 중 50만명이 사망했다.

강간이 광범위하게 자행됐다. 소련군은 200만명의 독일 여성을 강간했다. 강간은 스탈린이 고무하는 정책이였다. 소련군의 규율이 깨진

결과가 아니었다. 독일군 손에 숨진 800만명의 소련군에 대한 보복이 필요했다. 현지 남성에 비해 건강상태가 좋은 미국, 캐나다  유럽주둔군 장병들은 손만 뻗으면 유럽여성들과 사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여성을 강간했다. 많은 여성들이 삭구들을 위해 성매매에 나섰다.

일본정부는 위안소를 만들었다.  태평양전쟁 때 일본이 아시아에서 저지른 일이 일본에서 발생하는 게 두려웠다. 1946년 일본인 미혼모에

게서 9만명의 애기가 태어났다.

내장이 위축된 유대인 대학살 생존자들에게 갑자기 너무 많은 음식을 줘 2000여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참극도 있었다.  해방된 수용소에서 생존자들은 본능적으로 섹스에 탐닉했다.

종전에도 불구하고 폴란드에서는 1000명의 유대인이 살해됐다.

역사 청산은 어디에서나 미완이었다. 원칙도 없었다. '상징적'인 청산을 위해 '재수없는 희생양'이 된 반역자도 많았다. 지도자들은 현실과 타협했다. 부족한 전문인력을 채우기 위해 민족반역자가 필요했다.

기득권층에 최소한의 타격만 가했다. 한국과 달리 비시프랑스의 부역자들을 '철저히' 청산했다는 인식에는 '신화'가 섞여있다는 사실을 <0년>은 드러낸다.

가짜 레지스탕스 투사도 등장했다. 반나치활동을 하다가 수용소생활을 했다는 증명서도 야시장에 가면 살 수 있었다. 일본의 역사청산은 유럽의 경우보다 더 관대햇다. 점령군은 일본사정에 어두워 누가 나쁜

놈인지 가려내기 어려웠다. 만주국사업부 차관으로서 노예제를 방불케하는 강제노역의 총책이였던 기시노부스케(岸信介,1896~1987)는 1957년 일본총리가 됐다.

저자는 역사학자이지만 우리가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이다. 그러나 그는 절망속에서 희망이 싹튼 과정을 그려낸다. 보다 평화롭고 평등하고 안전한 세상이 1945년 속에서 꿈틀댔다. 서부유럽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기운은 있었으나  혁명의 빅뱅은 없었다. 우선 스탈린이 혁명을 꺼렸다. 그는 동구원을 집어 삼킨 것에 만족했다. 혁명을 대신 한 것은 사회민주주의 성향이 강한 복지국가의 탄생이였다.

 

6개국어를 구사하는 부르마교수는 세게100대 공공지식인으로 수 차례 선정된 세게적인 석학이다. 문명도 야만을 낳을 때가 있다. 문명에는 항상 야만의 그늘이 드리운다.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2016년에

전쟁이라는 야만이 싹트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김환영 중앙일보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