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城)의 거리 룩셈부르크(Luxembourg)
1991년 6월 촬영한 룩셈부르크.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SGI 회장
룩셈부르크의 비안덴
-책자들만 ‘중세’를 읊조렸다-
경쾌한 쇳소리가 울려 퍼지는 거리로 홀린 듯 빨려 들어가 보니 6인조 밴드가 풍악을 울리고 있다. 구경꾼이 삼삼오오 모여들고, 그 뒤로는 거대한 성채가 마을의 골목을 굽어보면서 하늘을 병풍처럼 막아선다. 생화로 장식한 테라스는 느닷없이 지상에 떨어진 하늘의 선물처럼 다소 비현실적이다. 길모퉁이 여기저기에 차려진 책상들은 동네 전체를 깔끔한 서재로 분장시켰다. 책상마다 펼쳐진 고서나 중고서적은 정성스러운 포장과 손질 덕분에 싸구려 티가 나지 않는다.
마을의 악대가 중심가를 누비고 다니며 흥을 돋운다.
물론 장작을 패고, 돼지를 잡고, 치즈를 녹이며, 날짐승의 털을 뽑고, 송어를 굽고, 야바위꾼이 순진한 농부를 속이는 카드를 돌리며 왁자지껄 박장대소하는 그런 축제는 아니다. 마구간과 짚더미 뒤로 아가씨 손을 끌어당기는 병사들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와플 과자 굽는 냄새는 고소하다. 옷깃을 스치는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의 향수 냄새도 적당히 향긋하다. 엘리베이터 속에서 견뎌야 하는 악취 같은 것은 없다.
사람들은 저마다 불어, 네덜란드어, 독어로 이야기한다. 호텔과 식당과 가게에서 그 이름과 간판도 제각각이다. 이곳이 독일의 산골인지, 프랑스의 소읍인지, 아니면 플랑드르의 마을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모두 그럴 듯하게 예스럽고, 어중간하다. 한 곳에 오래 있던 것의 기억은 없다. 서로 절충되고 중첩되고 그럭저럭 어울려서 제 것만을 고집하지 않는 독특한 개방성이다. 그저 여러 세기, 여러 고장의 양식이 중첩되었으나 거부감을 주지는 않는다.
장식물이 책자와 나란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닥다닥 붙은 집집마다 활짝 열어젖힌 차고가 이색적이다. 그 속에는 그동안 모았던 책 상자들이 줄줄이 손님을 맞는다. 마치 부자들이 모처럼 축일을 맞아 곳간 자물쇠를 열어 굶주린 독자를 맞이하려는 모습이다. 사람들은 책상 앞에서 손을 뻗고 기웃거리며 기이한 촉수를 지닌 짐승처럼 책을 뒤적이느라 정신이 없다. 성채를 향해 뻗은 경사로를 따라 아마추어들도 진을 쳤다. 활짝 제쳐놓은 승용차를 좌판으로 삼은 여인도 있다. 또 돌담 위에 되는 대로 책을 수북이 쌓고서 손님을 기다리는 처녀도 눈을 사로잡는다.
마을에서 여섯번째를 맞은 도서제(圖書祭)이지만 올해는 조금 각별하다. 룩셈부르크가 유럽의 문화중심도시로 선정되어 그 전체 행사의 하나로 축제를 치르기 때문이다. 아르덴 숲과 우르 강의 청정성을 상징하는 파란 사슴 그림이 축제의 엠블렘이다. 여러해 전에 마을번영회에서는 마을 사람끼리만 즐기는 축제보다는 외지인을 끌어들일 수 있는 축제를 생각했다. 기왕에 수력발전소를 겸한 심산유곡의 성을 찾는 등산객의 발길이 잦았지만 책을 내세우고 나서는 방문객의 연령층이나 국적도 훨씬 다양해졌다. 스트라스부르에서 브뤼셀을, 알사스와 플랑드르를 왕래하던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묵어가던 길목이다.
책을 수리하고 제본하는 시범을 보여주는 수사본 제작자 에냉주.
파리에서 엄마와 함께 온 소녀도 그간 모았던 동화책으로 작은 좌판을 벌였다.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동화책도 자랑이다. ‘앨범’으로 통하던 채색삽화집은 가격도 만만치 않다. 소녀는 주말마다 책 장터가 서는 파리 15구, 포르트 드 방브에서 마주치던 나딘 서점 아주머니의 딸이다. 르뒤와 리에주 등지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왔다. 책을 고를 때에도 맵시를 잃지 않는 아가씨들은 덤핑으로 나온 ‘잘 먹으면서 잘 마르는 법’ 같은 다이어트책과 인테리어 잡지를 고르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다. 독일 출판사들이 내놓은 싸구려 영어판 화집들 사이에 박물관에서 특별전 기념으로 제작한 훌륭한 도록들이 들어있어 균형을 맞춘다. 눈을 번쩍 뜨게 하는 자료들이다. 지난 수십년간 박물관에서 펴낸 도록의 가치는 여전히 대중의 눈길을 끌지 못하니 차라리 다행이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과 브뤼셀 왕립미술관에서, 또 프랑스 국립박물관협회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할 때마다 자료를 집대성해 펴낸 도록들이다. 단행본 저작은 한 권도 내지 않았지만 이런 도록과 논문집에 알짜배기 글을 발표하곤 하는 겸손하지만 유능한 필자들을 만나는 즐거움이야 말해 무엇하랴. 게다가 국립도서관에서 조직한 전시회에서 미술사가나 평론가를 쑥스럽게 할 만큼 폭도 넓고 깊이도 남다른 관점을 보여준 역사가들의 빼어난 글도 이런 도록의 보배인 것을….
파리에서 엄마와 함께 마을을 찾아와 그간 읽은 동화책을 내놓은 소녀.
성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프로모션’ 중인 구식 복장의 사내들.
성채를 향해 언덕길을 올라가면서 보니 손때 묻은 가구며 필통과 모래시계를 내놓고서 엉뚱한 광대와 기사 복장을 한 사내들이 손님을 끌었다. 치렁치렁한 드레스로 그 곁을 지키는 아가씨는 어색한 거드름을 피우는 중이다. 특별히 일기나 수첩을 선물하기 위해 즉석에서 맞춤으로 제작해주는 코너에도 사람들이 북적였다. 책을 ‘수리’하고 복원하는 공방도 어수선하다. 이웃 프랑스 모젤 지방에서 온 ‘에냉주 스크립토리움’은 일종의 수사본 서적 공방이다. 일가족이 함께 움직이는 이 집단은 유럽을 유랑하고 학교와 성당과 역사의 현장으로 축제판을 쫓아다니면서 중세 필사본 글쓰기의 전통을 보급하고 있다. 필사본을 위한 종이와 잉크, 안료와 붓과 펜을 담은 함에 양피지와 템페라 기법의 재료까지 갖추고 있다. 이른바 화려한 색상의 ‘미니어처’ 세밀화를 그려볼 수도 있다. 여러 가지 견본 가운데에서 ‘베드로’의 B자처럼 복음서의 머리글자를 딴 것,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커플을 그린 것도 보인다. 아벨라르는 엘로이즈에게 사부로서 공부를 가르치기는커녕 자신의 무릎에 책과 애제자를 앉히고 엉큼하게 딴청을 부리고 있다.
그런데 요란한 흥정거리는 무엇일까? 지난 세기 초에 새로 개발되어 크게 유행했던 ‘아프리카 나래새’라는 관목을 재료로 개발한 ‘라푸마 나바르’ 용지에 한정판으로 번호를 매겨 몇 백부씩 인쇄한 책들이다. 대체로 에세이나 시집이지만 작가의 강연록을 묶어낸 소책자는 부럽기만 하다. 우리는 대중 앞에서 행한 강연을 책으로 다시 보기란 흔한 일은 아니다. 출사표를 던지고 대필원고를 읽던 후보자가 번지르르한 라미네이팅 표지 속에서 이발소 액자 속에 걸린 모델 같은 미소를 지으며 표지에 등장하는, 대량으로 배포되는 선전용 책자를 빼고는 거의 볼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처지 아닌가.
쐐기모양의 아주 의고적인 활자로 제목과 이름을 박아 신전의 띠벽에 새겨진 황제의 이름처럼 그 품위와 위엄을 더한 책자 가운데 인주 빛깔의 제목이나 산호빛으로 고상하게 가라앉았으면서도 약간은 들뜬 ‘로맨틱’한 잉크로 제목을 새긴 책 앞에서 욕심을 내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1935년 폴 클로델의 헤이그 강연록 ‘홀란드 회화 개요’는 “눈으로 듣는다”고 말했던 이 시인의 미묘하고 세련된 감수성에 대한 기대를 부풀리지 않을 수 없다. 이럴 때는 또다시 저녁 한끼 값을 시인의 책자에 헌납할 수밖에….
지난 세기 전반에 크게 유행했던 도시 기행책자를 좌판 위에 일습으로 갖추어놓았다. 모두 3색도 인쇄본이다.
창고에 늘어놓은 상자로 분류된 책들 사이로 벨기에의 작은 공업도시 샤를루아의 한 출판사에서 1938년에 펴낸 남루한 책이 보였다. 가톨릭계 상원의원 르네 드 도로로도트 남작의 친필서명이 들어 있는 극동여행기였다. 남만주 철도의 침대칸이 자기 고국의 철도보다 훌륭하다고 하면서 나귀와 말과 돼지 등을 차장으로 넘겨다보며 만주 사람들이 푸른 옷을 입고 있다고 쓰고 있다. 그런데 압록강을 건너 조선 땅에 들어서자 모두 흰옷을 입고 있다며 놀라워한다. 소나무로 덮인 구릉 아래 옹기종기 모인 초가 마을을 관찰하는 꼼꼼한 남작이지만 일본의 근대화를 찬양하는 말투였다. 부산까지 24시간을 내리 달린 짧은 기록이다. 한국 사람이 일본 사람을 싫어한다는 언질을 빼놓지는 않았다. 하지만 영미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일본에 경거망동을 제지하는 일종의 사절로서의 소회도 풀어내고 있다. 그는 일본의 팽창주의를 경계하면서 평화적 해법을 강조했지만 그 아시아 지배욕까지 간파하지는 못했다.
산마루를 독차지한 성의 규모에 입이 딱 벌어진다. 소슬한 가을 성채의 차디찬 돌난간을 쓰다듬으며 훌쩍 그림처럼 멀어진 마을을 내려다볼 때 그 전망은 더 그윽해 보인다. 성은 오랫동안 네덜란드 명문가 오랑헤-낫소 가문의 소유였다. 그 부속 예배당은 바구니 손잡이 식의 완만한 궁륭을 얹은 지붕 아래 검은 대리석과 전돌로 기둥을 삼았다. 망루를 거쳐 지붕 쪽의 본채는 더 뾰족한 첨두홍예로 받쳐진 화강암 다발기둥이 우람하다. 기사의 방은 거대한 중앙홀로 네 쪽으로 갈라지는 궁륭의 높은 천장이 고래의 뱃속에 들어서기라도 한 기분을 자아낸다. 부엌도 여러 개의 화덕과 창틈 사이로 눈부시게 부서져 들어오는 햇살 속에서 밀랍인형의 아주머니만 아니라면 무쇠로 된 식기와 조리기구는 좀더 진솔한 매력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마을로 다시 내려와 다리 근처에 자리 잡은 빅토르 위고의 집에 들렀다. 대문호의 자취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지만 과장된 면이 없지 않다. 여기에서도 이 거물은 책상 앞에 밀랍인형으로 심각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실의 재현을 위한 지나친 배려는 아니었을까. 그가 이 마을에서 보낸 두어달 동안은 그의 파란만장한 세상살이 가운데 무척이나 곤혹스럽고 힘든 때였다. 망명지에서 추방되고 돌아갈 길은 막막하고 아내와 자식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을 떠났을 무렵이다. ‘비참한 사람들’을 대서사시로 그려내고 위로했던 작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참담한 순간을 맞이했을 때 누구의 도움과 위로를 받을 것인가? 그 자신 한줄기 빛처럼 눈부셨어도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던 시련을 어떻게 견뎠을까?
중세의 마을이라고 강조하는 비안덴에서 중세의 모습은 오직 살아남은 것만 보인다. 두건 달린 외투의 탁발승과 짐승 가죽 옷을 입은 산적도, 회개하고 자진해서 수도생활에 귀의하고 하느님과 은밀한 결혼을 꿈꾸었던 동정녀 콤플렉스에 걸린 처녀들도, 페스트에 걸린 중환자도, 상이용사도, 문둥병자도 찾아볼 수 없다. 살아남은 촌락의 흔적도 없다. 잘 정비되고 밝은 중세의 단면만이 보인다. 빈곤은 누구 말대로 교회의 위상을 높여주었을 뿐이다. 수도회는 구빈문제에 대한 근본적이며 사회구조적인 모순에 대처하지는 않았다. 그런 점에서 청빈을 최상의 미덕으로 삼고 중세를 풍미했던 탁발수도승은 현실의 개혁자라기보다 거기에 순응하고 그 체제를 굳히는 극히 역설적인 방식을 보여주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중세부터 살아남은 마을이 없다. 오직 중세의 기억을 전해주는 책자들이 남았을 뿐이다. 조금 더 상류 쪽에 붙은 스톨쳄부르 마을은 집 몇채에 불과하지만 그나마 중세의 추억을 간직한 마을로 통한다. 굳이 스코틀랜드 스타일로 19세기에 복원했다고 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특징도 없는 무채색의 소박한 교회와 가옥들이다.
〈입력 : 2007.11.23 글·사진 ; 정진국|미술평론가〉
#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의 숨은 요새,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코니라고 불리는 룩셈부르크는 유럽 연합을 있게 만든 '솅겐 조약'이 체결된 마을 솅겐(Schengen)이 있고, 중세시대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아름다운 마을 비안덴에서는 대문호 빅토르 위고(Victor Hugo)를 만날 수 있다.
'작은 성'이란 의미의 룩셈브르크의 정식 명칭은 룩셈부르크 대공국이다. 주요 민족은 룩셈부르크인이 63%, 포르투갈인 13%, 프랑스인 4.5%, 이탈리아인 4.3% 등이다. 언어는 룩셈부르크어와 독일어·프랑스어가 사용되며, 종교는 가톨릭교가 87%, 개신교 등이 13%이다.
50미터가량의 높은 성벽에는 지금도 치열한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1위이며 또한 170여 개국의 다채로운 사람들이 공존하는 유럽 연합의 핵심국가가 되었다. 수도 룩셈부르크. 도시 전체가 요새화된 독특한 풍경의 중심에는 전쟁의 슬픈 흔적인 보크 포대가 있다. 또한 모젤(Mosel)강변에 펼처진 포도밭에서 생산되는 유명한 와인은 수량이 한정 돼 수출량이 부족해 좀처럼 음미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