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DMZ)
DMZ는 1953년 7월 한국전쟁 휴전으로 생긴 남북한의 경계, 즉 군사분계선을 따라 좁은 띠 형태를 이루는 구역이다. 우발적인 군사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지정했다.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2㎞ 남쪽에는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이, 2㎞ 북쪽에는 북한 쪽의 북방한계선이 있다. 그 사이 폭 4㎞ DMZ는 서쪽 임진강에서 시작해 동해안 고성군까지 이어진다.
우리는 흔히 한반도 허리를 가로지르는 군사분계선 길이가 155마일(mile)이라고 한다.
155마일을 흔히 쓰는 ㎞ 단위로 환산하면 249.45㎞다. 하지만 실제 측정한 군사분계선 길이는 238㎞, 148마일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비무장지대 면적도 달라졌다.
2013년 7월 녹색연합의 발표에 따르면 DMZ 총면적은 1953년 992㎢에서 2013년 570㎢로 43% 줄어들었다.
남·북방한계선 사이 거리가 4㎞를 유지하는 곳은 거의 없고, 일부 구간은 불과 700~900m에 불과하다.
정전 이후 지난 65년 동안 경계에 유리한 지점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군과 북한군은 군사분계선을 향해 남·북방한계선의 철책선을 밀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서해와 동해에는 DMZ가 별도로 없고, 대신 북방한계선(NLL, Northern Limit Line)이 그어져 있다.
정전 협상 때 UN군과 북한군 사이에 해상경계선은 합의를 보지 못했다. 정전협정 후 UN 사령관이던 마크 클라크가 우발적 무력충돌을 막기 위해 동해와 서해에 NLL을 설정했다.
서해 NLL은 백령도 등 서해 5개 섬과 북한 황해도 지역의 중간선을 기준으로 정한 선이다.
북한 측은 서해 NLL이 정전협정에 명시된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별도의 해상경계선을 주장하고 있다.
이로 인해 2002년 6월 서해 제1연평해전과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 등 서해 NLL을 둘러싼 충돌과 긴장이 이어지고 있다.
남북한이 마주 보고 있는 한강하구는 ‘한강하구 중립수역’으로 지정돼 있다. 임진강 하구인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만우리부터 인천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까지 약 67㎞ 구간으로 남북한 모두 민간 선박이 다닐 수 있는 남북 공용의 특수지역이다. 유엔사령부가 관리하며 한강 중심부에 임의의 경계선을 중심으로 상대측 100m 이내로는 진입할 수 없다.
DMZ 남방한계선 남쪽에는 민간인 출입을 막은 민간인 통제선(민통선)이 있다.
민통선은 과거 남방한계선보다 훨씬 남쪽으로 내려와 있었지만, 최근에는 점점 북쪽으로 올라가 동부전선에서도 민통선과 남방한계선 사이가 대부분 10㎞가 채 안 된다.
민북 지역, 즉 민통선과 남방한계선 사이의 면적은 1565㎢로 알려져 있다.
DMZ는 지난 65년 동안 일반인의 통행이 제한되고 개발이 불가능했다. 삼엄한 군사적 긴장이 이어지고 인적이 끊긴 탓에 야생 동물에게는 좋은 안식처가 되고 있다. 그래서 야생 동식물의 ‘보고(寶庫, 보물창고)’라고 불린다. 수십 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묵은 논들은 습지로 변하고, 다시 육상 생태계로 천이가 이뤄지기도 한다. 강과 하천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전 세계에 3000여 마리뿐인 저어새는 대부분 DMZ 주변이나 서해 연평도의 NLL 인근 무인도에서 번식한다. 땅바닥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기 때문에 사람이나 다른 포유동물이 없는 외딴 섬을 찾는 것이다. 여름철 백령도 바위섬에는 점박이물범이 머무는데, 지난해 해양수산부 조사에서는 410마리가 관찰됐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DMZ가 생태계 보고라는 말은 실상보다는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DMZ 안에도 남북한 GP가 있고, 나머지 구역은 온통 지뢰밭이기 때문에 동물 이동도 원활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남북한은 경계와 감시를 위해 DMZ의 수풀을 주기적으로 제거하기도 하고 잦은 산불이 발생해 숲이 불타기도 한다.
특히, 북한의 경우 북방한계선 주변의 산림 훼손이 심각한 수준이다. 지금은 중단됐지만, 남북이 경쟁적으로 내보내는 확성기 소리는 야생 동물의 생존을 위협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DMZ 자체를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민북 지역 생태계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남방한계선 너머 DMZ로 조사단이 직접 들어가 생태계를 조사한 사례는 2000년 경의선 철도 공사 때나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이 2009~2010년 진행한 DMZ 생태계 조사 정도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민북 지역에서 이뤄졌다.
동물생태학자인 한상훈 박사는 “DMZ 내에서는 미확인 지뢰지대여서 병사들이 다니는 길로만 다닐 수 있어 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DMZ 일원에는 반달가슴곰과 함께 사향노루가 100마리 서식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2008~2010년 환경부 조사에서 강원도 철원지역 DMZ에서는 사향노루가 촬영됐고, 산양·삵·담비·고라니 등도 관찰됐다.
지난 6월 국립생태원은 DMZ 일원(민북지역 포함)에서 멸종위기 101종을 포함해 야생생물 5929종이 사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으로는 사향노루·수달·검독수리·노랑부리백로·수원청개구리·흰수마자 등이 관찰됐다. 야생생물 II급인 담비·삵·검은머리물떼새·구렁이·금개구리·물방개·가시오갈피나무·가는동자꽃 등이 발견됐다.
군인들 사이에서는 호랑이나 표범을 봤다는 목격담도 있지만, 실제 조사에서는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도 DMZ와 민북 지역이 생태계의 보고임은 틀림없다. 면적은 남한 전체의 8.1%이지만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267종의 37.8%, 남한 전체 동식물종의 30% 이상이 서식한다.
DMZ 생태전문가인 전선희 씨는 “임진강 너머 장단반도에는 겨울철 독수리가 500~600마리씩 월동했는데, 최근에는 400마리 정도로 줄었다”며 “독수리가 이제는 전국으로 흩어져 겨울을 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민북 지역에는 다양한 생태관광 자원을 갖추고 있다. 우선 국내 람사르 습지 1호이자 희귀한 고산 습지인 인제 대암산 용늪, 열목어가 뛰노는 양구의 두타연이 있다. 또, 차별 침식으로 인해 거대한 화채 그릇처럼 움푹 팬 모양의 양구 펀치볼, 북한강 상류의 하천 습지인 화천 양의대 등이 있다.
철원·연천의 두루미도 생태관광 자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1월 철원에는 역대 가장 많은 두루미 930마리가 찾아와 겨울을 나기도 했다. 전 세계 야생 두루미의 30%를 차지한다. 주민들이 볏짚이나 우렁이 같은 먹이를 제공하는 등 보호 활동을 펼친 덕분이다.
지난달 29일 오전 8시 경기도 연천군 남방한계선에 있는 임진강 필승교 수위가 2.05m에 이르렀다.
비홍수기 인명 대피 기준인 2m를 넘어선 것이다. 같은 시각 임진강 홍수 조절을 위해 필승교 하류 10㎞ 지점에 설치한 군남홍수조절댐 수위도 24.82m로 높아졌다. 한국수자원공사는 군남댐 수문 13개 중 7개를 열고 초당 310.4㎥의 물을 방류했다.
이번 수위 상승은 임진강 상류 북한 황강댐의 방류보다는 집중호우로 인한 자연 발생적인 수위 상승이었다. 하지만 과거 2009년 9월 북한은 황강댐을 일방적으로 방류해 남쪽 야영객 6명이 희생되는 사례가 있었던 만큼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2016년 7월 6일에도 북한은 사전 통보 없이 황강댐을 방류한 바 있다.
임진강과 북한강은 남북한이 함께 사용하는 ‘공유하천’이다.그런데 북한은 한국과 협의 없이 2007년을 전후해 임진강 상류에 황강댐(저수량 3억5000만㎥) 등 5개의 댐을, 북한강 상류에는 임남댐(금강산댐, 저수량 26억㎥)을 건설했다. 그리고 황강댐에서는 서쪽 예성강 쪽으로, 임남댐은 동쪽 동해안으로 물을 돌리는 ‘유역 변경’을 했다.
한국수자원공사에 따르면, 황강댐 담수 후 임진강 유량은 평상시 18.1%, 갈수기에는 44.4%가 줄어들었다. 임진강 하류 구간은 유량이 연간 1억㎥가 줄면서 바닷물 영향이 더 커졌고, 염분 농도도 상승했다. 북한강 쪽에서는 2000년 임남댐 건설 후 화천댐으로 유입되는 물은 41.4%(연간 12억5000만㎥)이 줄었다. 이로 인해 화천·춘천·의암·청평·팔당 등 한강수계 수력댐의 발전량이 연간 26만 3965㎿h가 줄면서 454억 원의 손실이 나타나고 있다.
임남댐 붕괴에 대비해 만든 평화의 댐 상류 북한강은 평소 강이 말라붙어 생태계 자체가 바뀌고 있다.
전문가들은 남북이 ‘공유하천 수자원관리위원회’ 같은 기구를 설치해 수자원 배분 문제, 홍수 방지 문제 등을 협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근 민북 지역에서도 개발이 진행되면서 생태계 훼손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무허가 인삼밭 개간으로 숲이 훼손되는 일이 늘고 있다. 2007~2009년 사이에만 경기도 민북 지역의 4㎢가 인삼밭으로 개간됐다.
5~7년씩 재배하는 인삼은 비교적 손이 많이 가지 않기 때문에 농민들이 선호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환경단체 등에서는 DMZ와 민북 지역 생태계 보전을 위해 이들 지역을 유네스코의 접경지역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접경지역 생물권 보전지역(Transboundary Biosphere Reserve, TBR)은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서 2~3개국 국경에 걸쳐 있는 곳을 말한다.
체코-폴란드 국경의 크르코노세 국립공원은 유네스코 접경지역 생물권보전지역 중에서도 대표적인 사례다. 1959년에 지정된 폴란드의 카르코노제 국립공원과 1963년에 지정된 체코의 크르코노세 국립공원은 1992년 함께 유네스코 접경지역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두 공원은 70여 가지 사업을 함께 진행하며 사실상 하나의 공원처럼 운영되고 있다.
통일 전이라도 남북한이 DMZ 생태계 보전에 협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인 셈이다.
지난 2010년 8월에는 환경부가 DMZ 일원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장 북한 쪽은 접경지역 생물권보전지역 지정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고, 국립공원 지정에도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지난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DMZ 평화 이용에 반대했다.
GP의 철수 등 DMZ의 실질적 비무장화가 이뤄지면 군사분계선 근처까지 전진 배치한 북한의 장사정포도 후방으로 물려야 하고, 그렇게 되면 야포 위주의 전력 우위를 상실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의회 연설에서 “DMZ에 세계평화공원을 만들고 싶다”고 밝히자 북한은 “민족의 비극을 외국 관광객들에게 자랑거리인 듯 선전할 것이냐”며 “겨레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로써는 북한을 설득하는 과정도 필요하기 때문에 DMZ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는 데는 많은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규제를 우려하는 지역주민들의 목소리도 있기 때문에 민통선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는 것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편, 자연환경국민신탁 전재경 대표는 “DMZ나 민통선 지역에 토지를 소유한 사람으로부터 토지를 기증받아 해당 토지의 훼손을 방지하고, 추후 생태관광 등을 통해 수익이 발생하면 배분하는 방식으로 DMZ 생태계를 보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 중앙일보] 155마일? 야생 동물 낙원? …DMZ 둘러싼 진실과 거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