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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멸 행진곡의 나팔수 낙하산인사

 정부의 공멸행진곡

 

세계 최대의 해운회사인 ‘몰러-머스크(Moller-Maersk)’는 덴마크 기업이다. 인구 500만 명에 불과한 소국이 해운시장 15%를 점유한다. 2위는 바다가 없는 스위스 국적의 ‘지중해 해운’으로 점유율은 13%. 유럽 소국이 글로벌 거대기업을 지켜온 기지(機智)는 정확한 예측에 의한 ‘손실의 내면화’,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사즉생(死卽生)이다.

 

‘죽고자 하면 산다’는 이순신의 철학이 유럽에서 꽃피는 게 당혹스럽다. 아니 유럽만이 아니다. 선박 1100척을 보유한 중국원양해운집단은 노후화 선박 매년 5% 폐선, 12만 명 인원감축을 선언하고 대규모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15억의 중국몽인 바다 실크로드 (一帶一路)를 향한 뼈아픈 ‘손실의 내면화’다.


머스크사를 최고의 해운기업으로 등극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 대우해양조선이라면 좀 웃기는 스토리다. 2011년부터 1만8000톤급 컨테이너선을 20척가량 건조해 줬는데, 자금융자책은 한국의 수출입은행이었다. 미래 문제는 뒷전, 회사가 우선 돌아가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이었다.

실체가 드러난 청와대 서별관회의의 밀실기획에 낙하산 경영진이 착실히 응답한 결과였을 것이다. 한진해운이나 현대상선에는 용선(傭船)을 권장했다. 자가(自家)가 아니라 월세로 살라는 정책이었는데, 조선업 세계 1위 국가에서 수출품을 실어 나르는 배가 주로 외국 선박이 된 이유다. 용선료 협상은 세입자가 월세를 면제해 달라는 궁색한 탄원이다. 사정이 그리 되었다.

  조선업은? 15년 전, 일본과 중국이 대규모 구조조정에 돌입했고, 엑손과 모빌 등 정유업체가 시장불황에 대비해 몸집을 대거 줄였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은 국민적 비난과 노조파업 같은 위험부담을 피하려 공격 경영을 택했다. 사즉생이 아니라 살고자 몸부림친 연명전략이 급기야 올해 숨이 끊어질 고비에 이르렀다.

 

세계 상선의 총톤수는 10억t인데 한·중·일의 건조능력은 연간 1억t, 선박당 수명이 30년이니 수주절벽은 한국이 제조한 참사다. 일본, 중국, 미국은 한국의 남동부 해안에서 울려 퍼지는 선박건조의 우렁찬 진군가를 걱정스럽게 듣고 있었던 거다.


하늘이 내린 천상의 선물로 여겼던 해양시추선은 자폭테러가 되었다. 조선 3사가 주문받은 해양시추선은 줄잡아 50척, 저유가로 인도 거부가 예정된 시추선을 울며 겨자 먹기로 만들어야 한다. 인도를 거부당한 시추선이 남동부 연안에 진열될 것이다. 외국에서 사 온 설계도면, 특수엔지니어링, 첨단기술 비용 청구서가 날아들 것인데, 서민들이 십시일반 납부한 혈세 12조원이 그 비용으로 쓰일 예정이다.

조선 3사 노조가 8만 명 인력감축을 전제한 정부 구조조정 대책에 사생결단의 항전을 예고한 것에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2012년부터 금속노조와 조선노조연대가 불황 대비와 지속 가능성을 위해 조선업 종합발전대책을 요구해 왔지만 묵살당했다. 대량해고와 고용불안에 신경을 곤두세운 노조와 설비감축, 합병, 매각 같은 폭풍 사안을 담판 지을 간 큰 경영진, 배포 큰 정치인은 없었다. ‘이제 와서 책임 전가?’를 외치는 조선노련의 분기탱천에 항변도 제대로 할 수 없다. 꼴이 우습게 됐다.


사정이 이러하지만, 정부의 구조조정 특단책은 앞뒤가 바뀌었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불안하기까지 하다. 구패러다임의 연장 내지 설비감축 정도에 불과하다. 적어도 향후 10년간 조선업과 해운업의 시장상황을 정확히 예측한 미래지형도를 토대로 ‘사즉생’을 결단해야 했는데, 조선 3사의 생명 연장을 또 결의했으니 공멸(共滅)과 다름없다.


경제논리가 아닌 정무적 판단이 더 승했다. 12조원이라는 거액의 공적자금이 투입된다면 엄중한 조건을 못 박아야 한다. 사태를 이렇게 만든 파산의 책임소재를 명확히 밝히고 단죄하는 것이 먼저다. STX조선에 5조원을 낭비한 자, 조선 3사를 파국으로 몰아간 경영진을 가려 책임을 물어야 한다.

조선 3사가 내놓은 자구책이 적절한지 최고 전문가들의 검증을 받고 국민적 동의를 구해야 한다. 비상대책과 신산업모델을 내놓지 않으면 공적자금은 없다. 협력업체, 하청인력을 제외하고 조선업 노사는 그동안 잘 먹고 잘살았다. 쥐꼬리 월급에 근근이 살아온 서민들이 그들에게 돈을 줘야 하나? 그렇게 퍼준다면, 조세 불복 운동이 불붙을 것이다.

조선 3사, 해운 2사를 모두 살리자는 정부 대책은 ‘공멸행진곡’이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파산 기업들은 알짜배기 기업을 팔고 사업모델을 전면 재편했다. 수십만 명의 실직자가 쏟아졌다. 손실의 내면화, 기득권 포기를 선언하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이건 합창, 제창의 문제가 아니다. 화려한 시절과의 이별가, 구조조정을 지연시킨 담합정치, 담합경영에 대한 장송가여야 한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낙하신인사의 고백


지난 2월 출범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베이징 금융가의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었다. 홍기택 AIIB 부총재가 지휘하는 리스크담당 부서는 인원 보충이 이뤄지지 않은 탓인지 3명만 근무하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서울을 향한 억울함과 울분이 터져나온 것은 만난 지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기실 서울에서 그는 공공의 적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이나 STX조선에 천문학적 돈을 넣었지만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 지난 3년간 산업은행을 이끌던 그가 시쳇말로 동네북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렇지만 그는 할 말이 많았다. “대우조선에 대한 4조2000억원 지원은 서별관회의에서 결정된 것이다. 문건에는 은행별 지원 금액까지 써 있었다. 그저 지시에만 따랐을 뿐이었다.”

회의 참석자 이름도 직접 거명했다. 2013년 STX조선에 4조5000억원을 쏟아부었을 때도 똑같은 방식이었다고 했다.

 

 “AIIB 같은 국제기구는 메일 등 문서로 지시하고 보고 한다. 하지만 한국 관료들은 절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청와대와 금융당국이 자회사 인사의 각각 3분의 1씩을 내려 꽂았다.”

당사자 아니면 알 수 없는 휘발성 강하고 파괴력 있는 얘기들이었다. 파장이 커지자 그는  “정부와 협의를 통해 결정한 것”이라고 한발 뺐지만 보도 뒤 이곳 저곳에서 압박을 받아온 점을 감안하면 배경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의 폭로는 관치와 낙하산이 특정 산업의 몰락, 나아가 국

가경제의 피폐와 어떻게 연결지어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정부는 STX조선, 대우조선 등이 잘못 됐을 경우의 파장을 우려해 국책은행에 무조건 돈을 대라고 압력을 가했다.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고려했어야 할 경제 논리는 뒷전으로 밀렸다.

말을 듣지 않으면 못된 군대 선임이 후임을 은밀히 화장실로 불러내 얼차려를 주는 것처럼 갖은 압력과 수모를 안겼다. 근본 해법은 뒤로 미뤄지고, 불황이 길어지면서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됐다. 2008년을 정점으로 선박 수주가 줄고 중국 업체에 밀리면서 구조조정 필요성이 제기됐음에도 지금까지 뭉기적거린 것은 다 이런 내막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연결고리가 원활히 작동했던 것은 낙하산이라는 지렛대 덕분이었다. 청와대와 금융당국은 자신들의 사람을 마구잡이로 내려 꽂으면서 흥청망청했다. 권력바라기인 낙하산이 이의를 제기할 까닭이 없다. 오히려 권력과 함께 춤을 추면서 잇속도 챙겼다.

대우조선 사장을 지낸 남상태, 고재호씨 등의 권력 유착과 비리 의혹은 흘러넘친다. 관리감독을 맡은 산업은행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때의 민유성은 리먼 브라더스 인수건으로 허송세월했고, 강만수는 국책은행의 역할보다는 민간의 영역만 기웃거렸다. 홍기택 역시 3년 내내 존재감이 없었다.

 

단언컨대 ‘좋은’ 낙하산은 없다. 낙하산은 전문가 탄생을 막고,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할 누군가를 소외시킨다. 실력만으로 성공할 수 없게 되면 박탈감만 커지고, 모두가 연줄을 찾아 헤매게 된다. 권위주의, 밀실주의, 온정주의가 만연하고 공공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먼저 고려하게 된다.

회사가 어려워도 천문학적 퇴직금부터 버젓이 챙기는 것은 이들에게 너무도 당연한 행동이다.

 

낙하산은 권력을 중심으로 뭉친다는 점을 떠올리면 애초부터 지속적인 충성이나 의리는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책임 전가를 위해 비수를 꽂는 일도 다반사다. 낙하산인 그가 낙하산의 문제점을 얘기하는 게 당혹스러워 ‘본인도 낙하산 아닌가’라고 묻자 “자리를 거절하면 정권과 벽을 쌓게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나쁜 자리인 줄 몰랐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자기합리화다.

 

그러면서 그는 스스로를 영화 <25시>에서 나치의 표상으로 이용당하다 전범재판에 선 앤서니 퀸에 비유했다. 이런 태도를 감안하면 그가 권력의 속살을 노출한 것은 미필적 고의라 할 수 있다. 실제 그가 폭로를 통해 얻고자 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면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폭로를 생존을 위해 발버둥친 낙하산의 저급함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지금 산업은행은 감사원 감사에 검찰 수사까지 받고 있다.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인지 여부, 전직 사장들의 비리의혹에 산업은행 유착 및 연루 여부 등이 주 대상이다. 대우조선 문제는 이명박 정권 시절에 국한되지 않고 현 정권까지 이어지고 있다. 관치와 낙하산이 안고 있는 실상과 문제점을 파헤치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제2의 대우조선 사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경향신문,박용채 칼럼]홍기택이라는 낙하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