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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푸르러(一把靑)

그토록 푸르러(一把靑)



코로나로 인간의 위로 못받지만, 창작물 통해 끊임없이 위안받아
드라마는 상처를 치유해준 선물, 모차르트 미발표곡 들으며 행복
여섯 살 때 그린 우리 엄마 보며, 동심으로 돌아가 나 자신 위로


요즘 늦은 밤 맞은편 아파트 창을 건너다보면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방들이 예전보다 많아진 느낌이다. 늦게까지 넷플릭스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 많아진 것일까.

끝없는 볼거리로, 인간은 심심한 사람도 외로운 사람도 없어지는 세상에 산다. 코로나만 아니라면 멋진 신세계가 아닐 수 없다. 이미 외롭지도 심심하지도 않은 미래 인류의 꿈은 아픈 사람도 죽는 사람도 없어지는 걸지 모른다. 하지만 끝없이 출현하는 새로운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만만찮다. 풍성한 드라마들과 다큐 프로그램들을 하루에 아주 조금씩만 보면서, 그것들이 내 삶의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으로 자리 잡은 걸 부정할 수 없다.

1980년대 말 갓 뉴욕 체류를 시작하던 무렵, 밤마다 한국 드라마 비디오테이프를 몰아 보던 생각이 난다. 그 드라마들은 얼마나 많은 이민자의 외로움을 달래줬을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늘고 길게 사는 쪽으로 삶의 나침반을 돌리기 시작한 이후, 책이든 드라마든 초콜릿이든 조금씩 아껴 읽고 아껴 보고 아껴 먹는 편이다. 넷플릭스에 ‘몰아보기 코너’라는 걸 보면, 왜 몰아 봐야 하는데 하고 되묻는다. 진짜 딱 마음에 드는 걸 찾으면 책이든 드라마든 끝나 가는 게 너무나 아쉽다.

요즘 본 넷플릭스 드라마 중에 ‘그토록 푸르러(一把靑)’라는 대만 드라마가 있다. 너무 가슴이 벅차서 끝날까 봐 아쉬워하며 매일 딱 한 회씩만 울면서 봤다. 1940년대 중반 중일전쟁 당시, 전쟁터로 떠난 공군 조종사들의 험난한 삶과 죽음의 여정과 그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여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는 오랜만에 순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문득 인생이 한낱 꿈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절감하면서, 전쟁을 겪지 않고 사는 한평생이란 얼마나 길몽을 선물 받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속의 인물들은 전쟁 속에 악몽에 시달린다.

‘그토록 푸르러’의 제목은 슬프고 짧지만, 한 번뿐인 삶에 관한 더욱 아름다운 헌사로 들린다. 전쟁이 끝나고 중국 본토에서 대만으로 피란을 온 주인공들의 삶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친했던 사람들에게 본의 아닌 배신의 삶을 살아간다. ‘타이완에 바칩니다’ 하는 에필로그로 아쉽게 끝이 나는 이 아름다운 드라마는 전쟁이라는 악몽을 꿋꿋이 견뎌 나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다.

10여 년 전, 여행을 가서 하루 종일 보고도 다 못 봤던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臺北)의 ‘국립고궁박물관’에 관한 기억이 아련하다. 1940년대 말 장제스(蔣介石) 중국 국민당 총재의 지휘 아래 국민당 정부가 중국 본토에서 대만으로 이송해온 귀중한 보물들에 관한 기억이다. 그 보물들 때문에 마오쩌둥(毛澤東)이 대만을 침략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일찍이 문화에 대한 소중함을 알고 본토의 보물을 대만으로 가져온 장 총통의 지혜가 부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거대한 중국 본토를 언젠가 되찾을 것으로 생각하며 고향을 떠난 사람들에게 중국은 그저 과거 속의 낯설고 먼 나라일 뿐이다. 지척에 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이산가족들끼리 만나지도 못하는 북한은 우리에게 더 낯설고 먼 이방이 아닌가?

드라마 ‘그토록 푸르러’를 보다가 문득 어릴 적에 전기를 아끼느라 시골에서 올라온 친척 언니랑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들었던 라디오 드라마 ‘남과 북’이 생각났다. 6·25전쟁 당시 이산가족이 된 북한군 남편은 휴전선을 넘어 아내를 찾아 남하한다. 남편을 기다리다가 죽은 줄 알고 재혼한 아내가 두 남편 사이에서 절규한다는 그 슬픈 이야기는 어린 시절 내게 잊지 못할 슬픔의 자국을 남겼다. 어쩌면 라디오로 들어서 더 오래 기억되는지도 모른다.

어떤 시대나 늘 불안한 세상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위로받는가? 그리고 부모 형제가 있는 북한을 탈출해 갖은 고생을 겪으며 한국으로 온 사람들은 무엇으로 위로받을까? 애국가 가사 중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는 그들에게 오늘의 트로트 열풍은 위로의 선물일 것이다. 그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트로트보다는 옛날 드라마 보는 걸 좋아하는 어머니 덕에 나도 같이 옛날 드라마를 본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기차를 탄 기분으로 낯익은 배우들의 젊은 얼굴을 보며 자신을 보듯 쓸쓸해지기도 한다. 드라마는 그 시대마다 상처받은 우리의 삶을 위로해주는 고마운 선물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이 은둔의 시간들을 통해 순수한 감정을 끌어내는 쉼표의 기간과 맞바꾼 소중한 경험을 한 건지도 모른다. 드라마 속의 전쟁시대에 비하면, 마스크 좀 쓴다고 여행 좀 못한다고 엄살을 떨고 있는 건 아닐까?

인간이 인간에게 위로받지 못하는 세상이라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창작물들로 우리는 끊임없이 위로받는다. 며칠 전엔 248년 만에 발견된, 모차르트가 17세에 썼다는 미발표 피아노곡을 들으며 참으로 행복했다. 엉뚱하게도 슬며시 여섯 살 때 그린 내 그림을 꺼내 본다. 그 시절 갑자기 살이 찐, 뚱뚱한 어머니가 그려져 있다. 나 자신을 위로하기엔 충분한 싱그러운 동심을 만난다. 또, 봄이다!

                                                                             황주리 화가

 

그토록 푸르러 (一把靑 일파청)

넷플릭스 제목으로는 그토록 푸르러.총 31화의 대만드라마.​'타이완 문학 거벽 바이셴융 원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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