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욜엔 돌아오렴 <김민아 경향기자>
통증의 주관적 느낌을 수치화한 ‘맥길 척도(McGill Pain Index)’에 따르면, 인간이 느끼는 통증 가운데 최악은 작열통(불에 탈 때의 통증)이라고 한다. 다음은 손가락이나 발가락 절단, 초산(初産) 등의 순이다. 그런데 수치화할 수 있는 고통, 모르핀이라도 써볼 수 있는 고통은 차라리 나을지 모른다. 계량 불가능한 고통, 진통제 따위가 듣지 않는 고통, 하여 맞서 싸울 수도, 피해서 도망갈 수도 없는 고통은 어찌할 것인가.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에 김건우만도 세 명이에요. 세 명의 김건우가 같은 운명이라고요? 그걸 받아들이라고요?”(단원고 2학년 4반 김건우군 어머니 노선자씨)
“승희 아빠가 여기(가슴)가 너무 아파서 누가 때려줬으면 좋겠다고 울더라고요. 짓눌려서 죽을 것 같다고….”(단원고 신승희양 어머니 전민주씨)
“딸이 네 살 때부터 저 혼자 키웠시유. 아, 근듸 이렇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갔으니 미치겠어유. 한밤중에 편의점 가서 소주 대여섯 병 마시고 정신 잃어버린 적도 있어유. 길바닥에서 자고 있으면 119 구급차가 와서 실어다주고 그랬어유.”(단원고 김소연양 아버지 김진철씨)
“유방암 3기예요. 아이 사고 났을 때 8차 항암치료 중이었어요. 제가 아픈 건 두렵지 않았는데 아이가 이렇게 되리라곤…. 교황님 오셨을 때 미사를 갔는데 인순이 그분이 ‘거위의 꿈’을 노래하더라고요. 그때 이후 제일 싫어하는 노래가 됐어요. ‘거위의 꿈’은 미래를 보는 건데 우리는 미래가 없잖아요.”(단원고 길채원양 어머니 허영무씨)
슬픔에도 부피와 질량이 있을까. 세월호 유가족 13인의 육성기록 <금요일엔 돌아오렴>이 전하는 슬픔은 한없이 크고 무겁다. 안산 단원고 2학년생들은 3박4일 수학여행을 마치고 ‘2014년 4월18일 금요일’에 돌아오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그날 이후 가족들의 시간은 완전히 다르게 흐른다.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답이 없는 시간, 그동안 익혀온 어떤 삶의 기술도 무력해지는 시간, 살면서 쌓아온 세상과 인간에 대한 감각을 처음부터 다시 써내려가야 하는 시간”(인권운동가 미류)을 살아내고 있다.
당장이라도 생을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을 버티게 하는 힘은 떠난 아이들이 남긴 ‘숙제’라고 한다. 이창현군 어머니 최순화씨는 유가족을 불러주는 자리면 어디든 달려간다. 신호성군 어머니 정부자씨는 분향소에서 방문객을 위해 커피를 타고 분리수거를 한다. 문지성양 아버지 문종택씨는 416TV(세월호 유가족 방송) 일에 열심이다. 그들의 상처는 모두 다르다. 개별적이다. 그러나 치유의 길은 한 곳을 가리킨다. ‘진실’이다.
진실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세월호 가족을 ‘일반 국민’으로부터 분리하고 타자화하려는 술책이다. 새누리당 실세 김재원 의원은 여야 합의로 출범을 앞둔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두고 “세금 도둑” 운운한다. 조세저항을 이용해 세월호 특위를 정쟁 소재로 깎아내리려는 의도다. 선체 인양 문제 역시 다르지 않다. 실종자 가족들은 지난해 11월 “저희처럼 가족을 잃고 고통 속에 살아가는 분이 더 이상 생겨선 안된다”며 수색 중단을 요청했다. “가슴 절절한 용단”이라며 인양에 긍정적 입장을 보이던 이주영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새누리당 의원)은 이제 “국민적 합의가 이뤄져야 인양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치 ‘다수 국민’이 반대라도 한다는 듯이. 정작 여론조사에서는 인양 찬성(60.5%)이 반대(29.1%)를 크게 앞서는(리서치뷰 1월29일 조사) 것으로 나온다. 최근 선체를 조사한 영국 ADUS사 관계자도 “인양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세월호 가족을 ‘비국민’화하려는 책동이 끊이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때 그들과 더불어 울고, 그들의 숙제를 나누려 했던 ‘우리’가 어느 결에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잊었거나, 혹은 일부러 잊기도 했다. 단원고 임세희양의 아버지 임종호씨는 1993년 서해훼리호 사고 때 전주에서 의경으로 있다가 현장에 파견됐던 기억을 떠올린다. “유가족들이 시신 찾아 떠나가는 모습에 가슴이 얼마나 미어지던지…. 21년이 지났는데 바뀐 게 전혀 없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그때 만일 특별법이 제정됐더라면 세월호 참사가 났을까요.” 지금 영하의 추위 속에 진도 팽목항까지 걷고 있는 세월호 가족을 외면한다면, 언젠가 또다시 꽃 같은 아이들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우리’가 그토록 최악은 아니기를 바란다.

“승희 아빠가 여기(가슴)가 너무 아파서 누가 때려줬으면 좋겠다고 울더라고요. 짓눌려서 죽을 것 같다고….”(단원고 신승희양 어머니 전민주씨)
“딸이 네 살 때부터 저 혼자 키웠시유. 아, 근듸 이렇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갔으니 미치겠어유. 한밤중에 편의점 가서 소주 대여섯 병 마시고 정신 잃어버린 적도 있어유. 길바닥에서 자고 있으면 119 구급차가 와서 실어다주고 그랬어유.”(단원고 김소연양 아버지 김진철씨)
“유방암 3기예요. 아이 사고 났을 때 8차 항암치료 중이었어요. 제가 아픈 건 두렵지 않았는데 아이가 이렇게 되리라곤…. 교황님 오셨을 때 미사를 갔는데 인순이 그분이 ‘거위의 꿈’을 노래하더라고요. 그때 이후 제일 싫어하는 노래가 됐어요. ‘거위의 꿈’은 미래를 보는 건데 우리는 미래가 없잖아요.”(단원고 길채원양 어머니 허영무씨)
슬픔에도 부피와 질량이 있을까. 세월호 유가족 13인의 육성기록 <금요일엔 돌아오렴>이 전하는 슬픔은 한없이 크고 무겁다. 안산 단원고 2학년생들은 3박4일 수학여행을 마치고 ‘2014년 4월18일 금요일’에 돌아오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그날 이후 가족들의 시간은 완전히 다르게 흐른다.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답이 없는 시간, 그동안 익혀온 어떤 삶의 기술도 무력해지는 시간, 살면서 쌓아온 세상과 인간에 대한 감각을 처음부터 다시 써내려가야 하는 시간”(인권운동가 미류)을 살아내고 있다.
당장이라도 생을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을 버티게 하는 힘은 떠난 아이들이 남긴 ‘숙제’라고 한다. 이창현군 어머니 최순화씨는 유가족을 불러주는 자리면 어디든 달려간다. 신호성군 어머니 정부자씨는 분향소에서 방문객을 위해 커피를 타고 분리수거를 한다. 문지성양 아버지 문종택씨는 416TV(세월호 유가족 방송) 일에 열심이다. 그들의 상처는 모두 다르다. 개별적이다. 그러나 치유의 길은 한 곳을 가리킨다. ‘진실’이다.
진실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세월호 가족을 ‘일반 국민’으로부터 분리하고 타자화하려는 술책이다. 새누리당 실세 김재원 의원은 여야 합의로 출범을 앞둔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두고 “세금 도둑” 운운한다. 조세저항을 이용해 세월호 특위를 정쟁 소재로 깎아내리려는 의도다. 선체 인양 문제 역시 다르지 않다. 실종자 가족들은 지난해 11월 “저희처럼 가족을 잃고 고통 속에 살아가는 분이 더 이상 생겨선 안된다”며 수색 중단을 요청했다. “가슴 절절한 용단”이라며 인양에 긍정적 입장을 보이던 이주영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새누리당 의원)은 이제 “국민적 합의가 이뤄져야 인양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치 ‘다수 국민’이 반대라도 한다는 듯이. 정작 여론조사에서는 인양 찬성(60.5%)이 반대(29.1%)를 크게 앞서는(리서치뷰 1월29일 조사) 것으로 나온다. 최근 선체를 조사한 영국 ADUS사 관계자도 “인양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세월호 가족을 ‘비국민’화하려는 책동이 끊이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때 그들과 더불어 울고, 그들의 숙제를 나누려 했던 ‘우리’가 어느 결에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잊었거나, 혹은 일부러 잊기도 했다. 단원고 임세희양의 아버지 임종호씨는 1993년 서해훼리호 사고 때 전주에서 의경으로 있다가 현장에 파견됐던 기억을 떠올린다. “유가족들이 시신 찾아 떠나가는 모습에 가슴이 얼마나 미어지던지…. 21년이 지났는데 바뀐 게 전혀 없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그때 만일 특별법이 제정됐더라면 세월호 참사가 났을까요.” 지금 영하의 추위 속에 진도 팽목항까지 걷고 있는 세월호 가족을 외면한다면, 언젠가 또다시 꽃 같은 아이들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우리’가 그토록 최악은 아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