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평화상(ICAN) '핵무기 경쟁 끝내라'
지난 9일(현지시간) 노르웨이 오슬로의 한 식물원. 시민들이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이후 살아남은 나무에서 나온 씨앗을 심었다. 오슬로대 총장은 “여기에서 미래의 희망이 자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여섯 살이었던 원폭 생존자 다가와 도요코는 “오빠가 너무 아파하다 아버지에게 집에 있던 흉기로 자신의 고통을 끝내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고 소개했다.
다음 날 오슬로 시청에선 노벨 평화상 시상식이 열렸다. 올해 수상단체는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이다. 베아트리스 핀 ICAN 사무총장은 연설에서 “수백만 명의 죽음이 사소한 짜증 한 번으로 촉발될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는 “핵무기를 끝낼 것인지, 우리가 끝날 것인지 선택해야 하고 이 중 하나는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벨 평화상 시상식을 보며 북핵 갈등 와중에 정작 핵무기의 끔찍한 실상은 간과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의 핵무장이 빨라지면서 미국에서 군사적 대응을 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늙다리 전쟁상인’ ‘병든 강아지’ 같은 말 폭탄을 주고받는다. 경험해 보지 못한 핵은 타자화하고, 북핵 해법은 제재와 협상에 달린 것처럼 비친다.
하지만 ICAN은 미국을 포함한 핵 보유국들에 유엔 핵무기 금지협약을 채택하라고 요구했다. 1970년 핵확산방지조약(NPT)이 발효됐지만 미국과 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 등은 핵전력 현대화에 집중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핵무기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9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핵무기 없는 세상’ 구상을 뒤집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핵무기 부대 전투력을 강화해 앞으로 개발될 미사일방어 체계를 뚫어야 한다”고 했다. 영국도 핵잠수함 현대화 사업을 진행 중이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취임 후 핵잠수함에 탑승했다. 중국은 핵전력에서 미·러를 능가할 수도 있다는 평가다. 이들 5개 나라의 핵폭탄만 2만2000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핵무기 감축을 위한 다자 외교의 필요성은 냉전보다 커졌다. 하지만 미·중, 미·러의 관계는 물론이고 미국과 유럽 동맹국들 사이도 삐걱거린다. 가디언은 “핵 강국들이 핵무기 감축 대신 강화에 골몰하면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토양을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ICAN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고안됐다는 것이 이제 우리가 자유를 누릴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고 한탄했다. 북핵의 근원적 해법은 핵의 두려움을 공유하고, 북한과 핵 보유 강대국들에 국제사회가 감축과 동결이라는 행동을 강력히 요구해야 도출될 수 있을는지 모른다.
[중앙일보;글로벌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