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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적 암살’의 역사

미국의 ‘정적 암살’의 역사

 

이라크 바그다드 시내에서 미군의 공습으로 숨진 이란 혁명수비대 고드스 특부수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 장례식이

열린 4일(현지시간) 추모객들이 차량을 타고 이동하고 있다. 바그다드|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 이란 혁명수비대 고드스 특수부대를 이끌던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표적 살해’한 것을 계기로 과거 미국이 반미 지도자들을 제거하려 했던 다른 사건들도 재조명되고 있다. 미국이 시도한 ‘정적 암살’은 “불법·비윤리적”이라고 비판을 받아왔는데, 이번 솔레이마니 제거 작전 역시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1960년 미국 뉴욕에 도착한 파트리스 루뭄바 콩고민주공화국 초대 총리(가운데)|위키피디아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1960~70년대 공산·사회주의 진영의 정치 지도자들을 암살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반제국주의자로 유명한 파트리스 루뭄바 콩고민주공화국 초대 총리가 1961년 살해됐다. 당시 루뭄바 총리가 소련과 가까이 지내려 하자, CIA가 암살 작전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쿠바의 혁명 영웅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미국의 암살 시도는 알려진 것만 8건이다. 이념과 상관 없이 미국 입맛에 맞지 않은 정치 지도자들도 제거했다. 1961년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자 라파엘 트루히요 대통령에 대한 암살 계획을 세운 것도, 1963년 고 딘 디엠 남베트남 대통령이 전쟁에 방해된다며 정권 전복을 통해 그를 축출한 것도 미국이었다. 미국은 1976년 정치적 암살 금지령을 내리지만, 잘 지켜지진 않았다. 1986년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의 집을 공습했다.

쿠바 혁명 영웅 체 게바라(왼쪽)와 피델 카스트로|위키피디아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위키피디아

냉전이 끝나고 21세기 들어서는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벌였다. 테러조직에 대한 공격은 명분을 획득해 ‘암살’이 아니라, 공개적인 방식으로 이뤄졌다. 주체도 CIA에서 미군으로 바뀌었다. 2011년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 지난해 이슬람국가(IS) 수장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가 미군의 공습으로 사망했을 때는 미국 대통령의 성과로 여겨졌다.

2011년 5월2일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는 미 백악관 상황실. |백악관

하지만 솔레이마니는 다르다. 워싱턴 중동연구소의 찰리 리스터는 영국 가디언에 “이란 고드스군이 테러조직으로 지정됐다고 해도 (솔레이마니 제거는) 단순히 이란의 고위 공무원을 암살한 것이 아니다”면서 “솔레이마니가 이란에서 최고지도자의 뒤를 잇는 강력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지워버릴 수 없다”고 했다. 유엔 회원국이 다른 회원국의 공인 제거를 위해 계획적으로 행동한 것, 공습 지역인 이라크가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공습한 것을 두고 미국이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전단체인 코드핑크의 메데아 벤자민은 4일 알자지라에 “이것이 IS와의 싸움과 관련이 없다면, 합법성을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이 다른 주권국가의 장성 지휘관을 죽이는 것은 전시가 아니고서는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공화당 매파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솔레이마니 제거를 승인하지 않았다. 솔레이마니 이전까지 미국이 외국의 군부 고위 인사를 제거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야마모토 이소로쿠 일본 연합함대 사령장관을 처단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미국의 킬러드론

미국 노터데임대 국제법 교수인 메리 엘렌 오코넬은 2000년 무인 정찰기(드론)의 출현으로 미국이 조금 더 위험한 길을 걷고 있다고 지적했다. 솔레이마니의 공습에는 최첨단 무인정찰기 MQ-9 리퍼 드론이 투입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드론 공습’이 국제법에 따라 자기 방어로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코넬은 “미국의 드론 공습이 유엔 헌장을 위반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주목할 것은 미국이 더 많은 드론 사용으로 국제법을 희석하면서 점점 불법적인 상황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라고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