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칸토(bel canto) 오페라
소프라노를 떠올리면 엄청난 고음과 기교를 뽐내는 모습이 상상된다고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미 ‘벨 칸토 오페라’에 대해 알고 계신 겁니다.
‘벨 칸토’란 ‘아름다운 (bel) 노래 (canto)’라는 뜻인데요. 달리 말하면 ‘아름답게 노래하는 가창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벨칸토 오페라는 18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이탈리아에서 정립된 오페라 장르입니다. 작곡가 벨리니를 시작으로 로시니, 도니체티에 의해 정립되고 완성된 장르죠.
오페라의 발자취를 잠시 살펴보자면 이렇습니다. 신화, 종교 등 비교적 진지한(재미없는) 이야기를 주제로 한 ‘오페라 세르세’가 먼저 등장했습니다. 이후 오페라가 비교적 대중적으로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살기도 힘든데, 공연장에서까지 재미없고 지루한 오페라를 봐야 하냐!”라며 재밌는 오페라를 원했습니다. 그렇게 모차르트를 중심으로, 귀족들을 풍자하거나 왁자지껄한 이야기를 담은 ‘오페라 부파’가 성행하죠. 하지만 더 시간이 흐른 뒤 사람들은 더 자극적이고 재밌는 콘텐츠를 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극의 스토리보단 성악가의 기교를 더 강조한 ‘벨 칸토 오페라’가 등장한 겁니다.
벨 칸토는 장르가 아닌 창법으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벨 칸토 창법’은 우아하고 서정적으로 노래하는 한편 성악가가 발휘할 수 있는 극한의 기교를 총동원해 노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벨칸토 창법의 최대 관건은 ‘유연한 레가토(legato)’입니다. 빠르게 지나치는 음일지라도 끊어지지 않도록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노래해야 하죠.
그렇다면 입이 쩍 벌어질 만큼 대단한 기교를 보여주는 성악가는 누가 있을까요?
■ 몽유병의 여인, 벨리니
작곡가 벨리니는 이탈리아 벨 칸토 오페라를 이끌던 선도주자였습니다. 하지만 오페라 <몽유병의 여인>은 비교적 늦게 흥행한 작품이죠. 여주인공 아미나는 엘비노와 결혼할 사이였으나, 아미나의 극심한 몽유병 탓에 밤중에 다른 남자와 불결한 일을 저질렀다는 오해를 삽니다. 결국 엘비노는 아미나에게 파혼을 선언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아미나는 다시 일어나 잠결에 잠옷을 입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닙니다. 온전하지 않은 정신에도 엘비노를 그리워하는 노래를 부르죠. 이 모습을 본 엘비노는 아미나의 결백을 알게 되고, 아미나의 손에 다시 반지를 끼워줍니다. 그리고 행복 속에 막을 내립니다.
‘아 믿을 수 없어라.. 아! 내 맘속 기쁨 ah non credea.. ah! non giunge’은 주인공 아미나가 잠결에 엘비노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노래하고, 마침내 오해가 풀려 엘비노의 사랑을 되찾아 행복을 노래하는 곡입니다.
“벨 칸토의 부활, 마리아 칼라스”
마리아 칼라스는 벨칸토 오페라를 부활시킨 장본인입니다. 20세기 들어 대규모의 오케스트라가 성장함에 따라 벨칸토 오페라는 쇠퇴를 맞습니다. 하지만 칼라스는 ‘벨 칸토란 목소리를 악기처럼 최대한도로 활용하고 제어하는 기법’이라고 말하며 벨칸토 창법을 끊임없이 연구했습니다.
어두운 음색 탓에 메조소프라노로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한 칼라스는 끝없는 노력으로 극고음의 기량도 뽐내는, 그야말로 모든 성역을 아우르는 절대적인 소프라노로 자리 잡습니다. 그는 “나는 근육을 쓰는 걸 즐기며 발전해가는 체조선수나 춤 자체를 즐기며 실력이 늘어가는 무용과 학생 같았죠“라며 벨 칸토를 연구하던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당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비인기 장르인 벨칸토 오페라 노래들을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도 흥얼거리며 외웠다고 합니다. 마침내 벨칸토 오페라 주역의 기회가 찾아왔을 때 칼라스는 화려하게 노래했고, 드라마틱 한 음색과 화려한 기교로 화제가 됐습니다. 그렇게 그는 벨칸토 오페라의 제2의 전성기를 열었습니다.
앞선 영상의 5:04부터 템포가 빨라지며 기교가 시작되는데요. 6:30에서는 날카로운 칼라스 특유의 금속성 있는 음색을 뽐내며 극고음을 찌르고, 하강하는 선율을 매끄럽게 보여줍니다. 벨칸토 창법의 핵심은 빠른 음의 진행 속 유연함입니다. 칼라스가 벨 칸토의 권위자라 불리는 이유는 오랜 연구 끝에 얻은 그 핵심 기술을 선보였기 때문이죠.
“이 시대의 디바, 조수미”
꾀꼬리 같은 맑은 음색으로 초절 기교를 선보이는 조수미 역시 벨칸토 오페라 하면 떠오르는 인물 중 한 명입니다.
영상의 6:44부터 박자가 빨라지기 시작하며 화려한 스케일이 시작되는데요.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보다 훨씬 빠른 템포로 진행하면서도 음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는 세밀함이 돋보이네요. 7:55에서 칼라스와 마찬가지로 고음을 내는 부분이 등장합니다. 칼라스의 고음이 비교적 어두우면서 날카로웠던 반면 조수미의 고음은 그야말로 명쾌한 고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7:55에선 바로 선율을 끝내지 않고 또 다른 기교의 스케일을 선보이는데요. 이는 벨칸토 오페라에서 자주 등장하는 기교입니다. 성악가들은 악보에 적힌 대로가 아닌, 자신의 기량을 뽐낼 다른 스케일을 임의로 추가해 부르곤 합니다. ‘나 이 정도도 할 수 있어!’라는 장기 자랑과도 같은 구간이죠.
■ 신데렐라, 로시니
모두가 알고 있는 동화 ‘신데렐라’를 주제로 한 오페라도 있습니다. 작곡가 로시니 역시 18세기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를 발전시킨 인물인데요. 오페라 <신데렐라>에 등장하는 아리아 ‘이제 슬픔은 없어 Non piu mesta’에는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스케일이 등장합니다.
같은 멜로디가 세 번 등장하면서 조금씩 스케일이 추가되는데요. 뒷부분은 가히 따라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얼마나 어렵냐고요? 한 옥타브 낮춰서 따라 불러보세요! 어려운 스케일은 물론, 빠른 템포를 따라가기도 벅차실 겁니다.
“인간 딱따구리, 체칠리아 바르톨리”
이탈리아 성악가 체칠리아 바르톨리의 기교는 아무도 능가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어려운 스케일일지라도 편안하게 구사하는 그는 ‘인간 딱따구리’라는 별명을 갖기도 했죠. 그에게 트릴과 빠른 스케일은 웃으면서 즐길 수 있는 그런 재미난 놀이처럼 보입니다.
1:27부터 시작되는 스케일과 함께 바르톨리의 몸을 유심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성악은 호흡으로 내뱉는 소리입니다. 빠른 음을 선보이는 벨칸토 오페라라 할지라도 호흡을 놓쳐선 절대 편안하게 노래할 수 없죠. 바르톨리의 허리와 배를 살펴보면, 음 하나하나를 노래할 때마다 그 박자에 맞게 움직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호흡으로 이 모든 음들을 컨트롤하고 있단 증거죠.
번외로, 벨칸토 창법은 아주 옛날 16, 17세기 바로크 시대 때도 존재했는데요. 정확한 박자와 규칙에 맞게 진행하는 바로크 음악에도 ‘멜리스마’라는 이름의 초절 기교가 등장합니다. 체칠리아 바르톨리는 사실 바로크 멜리즈마의 강자죠. 그의 기량을 엿볼 수 있는 아래의 역대급 영상도 추천합니다.
0:58부터 등장하는 기교는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그의 눈을 보면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있어선 안되는 높은 실력을 요구하는 곡에서 집중과 호흡조절은 필수죠. 많은 성악가들이 바르톨리를 롤 모델로 삼는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바르톨리는 오로지 호흡으로만 노래하는 성악가입니다. 바르톨리의 노래하는 모습에선 그가 온몸을 사용해 노래하고 있단 것이 드러납니다.
“화려함 속 유연함, 조이스 디 도나토”
미국의 메조소프라노 조이스 디 도나토는 작년 첫 내한 공연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은 성악가입니다. 디 도나토의 레퍼토리 역시 메조소프라노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뮤지컬까지 장르를 떨칠 정도로 폭넓은 가능성을 제시하죠.
그의 신데렐라는 바르톨리보다 더 부드러움이 많이 느껴집니다. 이는 조이스 디 도나토 특유의 따듯한 음색과 서정적 표현력이 더해졌기 때문인데요. 이처럼 성악은 같은 곡이라도 성악가의 음색, 성역에 따라 확연히 다른 인상을 주는 분야입니다.
벨 칸토 오페라의 백미는 성악가마다 다르게 구사하는 기교를 찾는 데에도 있습니다. 같은 곡이라도 어떤 성악가가 부르냐에 따른 차이를 찾아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죠.
“기술이 끝나는 지점에서 예술이 시작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악가들은 고된 연습 끝에 화려한 창법의 기술을 연마합니다. 그리고 기술이 끝나는 바로 그 지점부터 예술의 아름다움이 시작되죠. 여러분이 생각하는 초절 기교의 끝판왕은 누구인가요? 아니, 화려한 기교를 넘어 여러분의 마음까지 울리는 예술가는 누구인가요?
참고|<오페라 교실> 이용숙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