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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시계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을 택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1971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시계태엽 오렌지>는 오렌지처럼 자연에 속한 인간 존재를 시계태엽 같은 인위적 장치로 조종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주인공인 10대 소년 알렉스는 친구들과 코로바 우유가게(마약이 함유된 우유를 파는 가계)에 드나들며 여기저기서 온갖 비행을 작당하고 저지르는 데서 쾌락을 느낀다.

시쳇말로 지옥으로 직행할 역겨운 잡놈들이다. 굴다리를 지나가다가 노숙자에게 묻지마 폭행을 하고, 훔친 차로 드라이브를 즐기다 노작가 알렉산더의 집을 습격해 작가가 쓰던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원고를 찢어버리면서 그를 폭행하고 그의 아내를 강간한다. 글면서 이튿날 알렉스는 불평불만을 토하는 친구들을 완력으로 제압하여 자신이 리더임을 확인시키는 괴짜다.

그날 밤 알렉스는 한 저택에 침입해 집주인을 죽이고 도망치다 문 앞에 쓰러져 검거되는데 그를 왕따시키려는 친구들의 함정이었다. 그렇게 폭력과 반사회적 비행을 일삼던 알렉스는 살인죄로 14년형을 언도받고 투옥된다. 2년 뒤, 알렉스는 어떻게든 빨리 출소하고 싶어 국가가 지원하는 루도비코 갱생프로그램 요법의 실험 대상에 자원한다.

루도비코 실험중

 

"문제는 그 요법이 과연 진짜로 사람을 선하게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이지. 선함이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란다. 655321번아. 선함이란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어떤 것이야. 선택할 수 없을 때는 진정한 인간이 될 수가 없는 거야." 655321번은 알렉스의 수인번호다. 조건반사 원리학습의 세뇌 훈련인 루도비코 요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알렉스는 출옥하여 사회에서 자신이 저지른 일의 결과들을 어떻게 마주하게 될까?

알랙스

악을 재거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키 위해 국가권력이 개인의 자유의지를 침해해도 괜찮은지 묻는 앤서니 버지스(Anthony Burgess)의 소설<시계태엽 오렌지>를 스탠리 큐브릭이 영화화했다. 난해하면서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 큐브릭의 영화를 나는 좋아한다. 그의 영화촬영기법에 빠져든다. 인간의 폭력과 섹스에 대한 충동을 상징하는 오랜지색은 전반부의 알렉스를, 시계태엽처럼 정교하고 통제되는 기계화된 미래사회는 파란색으로 상징하는 색조의 버전은 낯설면서 매혹적이다.

 

현대의 의`과학은 인간의 본성까지도 개조하고 나아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는 인간의 개성을 변질시키는 폭거를 자행한다. 이런 무소불위의 정책집행은 여론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무책임한 정부를 용인하게 한다. 그걸 유도 조장하는 언론권력은 파렴치사이비를 양산한다. 이 영화는 현대 사회의 위선과 타락을, 공권력의 매카시즘이 개인의 폭력보다 훨씬 무섭다는 풍자영화다. 우리 모두가 경험했지 싶어 닭살 돋는다. 

하천을 지나가면서 알렉스가 서열정리를 위해 친구들과 난투극을 벌이기 직전

 

과거 군부독재의 폭압정치가 <시계태엽 오랜지>를 차용했을까? 싶었다. 영화<시계태엽 오렌지>는 미국영화연구소가 선정한 세계의 100대 영화  70위란다. 영국에선 모방범죄가 우려 돼 보급중단을 외쳤으며 그런 우려에 감독의 공식적인 상영금지요구로 27년 동안 음지에서 훔쳐보는 영화가 됐단다. 1971년 작품이니 50여년이 흘렀지만 전혀 새로운 장르의 최첨단영화 같다. 뛰어난 영상미는 지금도 연출자들의 텍스트가 된다나?

코로바밀크바에서 워밍 업은 일과의 시작

 

선택할 자유의지가 없는 인간은 사람일 수 없으며 다만 태엽 달린 오렌지처럼 누군가가 작동하는 수동적인 기계장치에 불과하다. 고로 사회구성원들의 선택과 동의 없는 모든 사회적 결정은 원천적으로 무의미하다. 알렉스의 자살 소동으로 정부는 루도비코 요법을 철회한다. 깨어난 알렉스는 다시 한 번 정부의 시술을 받고 정상 사회로 진입할 생각을 품게 된다.

서열 굳히는 알렉스

짐승 같았던 청춘은 태엽을 감았다 놓으면 걸어가는 기계인형 같기에 청춘은 가버려야만 한다. 글고 아들이 생긴다면 그 아들이 자신이 한 짓거리를 답습해도 막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아들을 낳아 줄 여자를 찾아 나선다. 알렉스는 이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싶은 거였다. 오래 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를 넷플릭스가 선사했다. 연속 두 번 보느라 긴 겨울밤을 잊었다. 강권하고 싶은 영화다.                     2020. 12

#잊을 수 없는 장면1) 알렉스패거리들은  노작가 아내를 강간하는데, 알렉스는 그 경황에서 빗속에서 노래하며(Signing in the Rain)’을 부르면서 구둣발로 박자를 맞춘다. 잔인한 폭력과는 불협화음인 순수한 노래를~?  알렉스가 알렉산더 부인이 입고 있는 몸에 착 달라붙은 빨강 레깅스를 가위로 조금씩 잘라내는 모습은 사악하다 못해 악마의 짓으로 마조히스트의 극치를 보여준다.

고양이와 사는 홀로여자, 동료들의 함정에 빠진 알렉스가 그녀를 사망케 하고 옥살이를 하게 된다

경찰이 된 옛 패거리 동료에게 연행 되는 알렉스

알렉스는 베토벤 열광팬으로 교향곡9번을 미치게 좋아했다. 허나 출소 후엔 죽음을 유혹하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

 

출처: https://pepuppy.tistory.com/1019 [깡 쌤의 내려놓고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