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결의 역습, 미생물과 같이 살아야 더 건강한 집
집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롭 던 지음|홍주연 옮김|까치|368쪽|1만7000원
오늘날 미국 아이들은 하루의 93%를 집이나 차 안에서 보낸다. 인류 역사상 처음 등장한 호모 인도루스(Homo indoorus·실내 인간)의 삶에서 집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생태학자인 저자가 집 생태계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집이 건강하지 않으면 그 속에 사는 사람도 건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인간의 집엔 적어도 20만종의 생명체가 우글거린다. 그런데 과학 발달로 100종 내외인 병원균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인류는 살균 강박증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벌레를 죽이고, 소독을 하고, 꽃가루를 없앴다. 멸균은 질병으로부터 인간을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짐승과 벌레, 세균을 몰아낼수록 우리는 전에 앓지 않던 병에 더 자주 노출되고 있다. 생명 다양성을 허문 대가로 면역 기능이 무너지고, 살충제를 남발하면서 내성을 지닌 괴물을 불러낸 결과다.
가장 극명한 사례는 러시아와 핀란드가 분할 점령한 북유럽 카렐리야다. 언어와 혈통이 동일한데도 도시화한 핀란드 쪽 주민들의 천식·비염·습진 발병률이 러시아 쪽 동포의 최고 10배나 된다.
깨끗한 물에 대한 잘못된 갈망도 예상치 못한 질병을 초대한다. 깨끗한 물은 멸균된 물이 아니라 병원체나 독소가 적거나 없는 물이다. 깨끗한 물을 넘어 좋은 물이 되려면 그 안에 다양한 생물종이 살면서 병원균을 잡아먹어야 한다. 살충 성분을 쓰지 않아 작은 갑각류가 종종 발견되는 덴마크 수돗물이 대표적인 좋은 물이다. 미국 상수도에는 질병을 일으키는 미코 박테리아가 대수층에서 끌어올린 우물물보다 두 배나 많다. 수돗물을 쓰는 가정의 샤워 꼭지에 사는 세균의 90%가 이 박테리아다. 저자는 수돗물 오염은 미코 박테리아가 염소 성분에 저항력을 갖게 된 결과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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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에 정원을 꾸민 엄마와 아들이 거실에서 화분 분갈이를 하고 있다. 실내 원예는 집의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는 좋은 방법이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그러나 무작정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얘기는 아니다. 저자는 야생을 조금만 회복시켜도 된다고 말한다. 마당 있는 집에 살면서 나무와 꽃을 심을 형편이 안 되면, 아파트 거실에 화분을 들이라고 조언한다. 화분 속 흙엔 우리 가족의 피를 건강하게 지켜줄 토양 미생물이 풍성하다. 알레르기 반응을 줄여주는 감마프로테오박테리아도 그 안에 산다.
자동차 대신 마차를 타며, 경운기 대신 인간 손으로 씨 뿌리고 소의 힘으로 밭 가는 미국 아미시 젊은이들은 병균에 노출됐을 때 알레르기 반응을 덜 일으킨다. 천식을 유발하는 달걀 단백질을 아미시 아이들 침실에 떠다니는 먼지와 섞어 실험용 쥐에게 뿌렸더니 아예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지 않더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집 안 생태의 균형을 되찾는 손쉬운 방법으로 저자는 발효 음식을 주목한다. 특히 김치의 '손맛'을 꼽는다. 똑같은 재료를 써도 집마다 김치맛이 다른 이유는 김치를 담그는 손에 사는 미생물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집 안 곳곳에 숨어 있는 미생물의 '집맛'까지 더해져서 '세균종 다양성'을 갖춘 김치가 탄생한다고 찬미한다.
몸에 좋은 미생물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다양한 인생 덕목을 만난다. 후춧가루를 뿌린 물에서 세균을 찾아내 세균학의 문을 연 17세기 네덜란드 학자 레이우엔훅은 평생 눈에 보이지 않는 것만 찾아다녔다. 그의 집념에서 소명의식과 헌신의 거룩함을 읽는다. 미국 가정집에 10억 마리나 있다는 징그러운 벌레 알락꼽등이 몸에 기생하는 세균은 맹독성 폐기물인 흑액을 분해하는 효소를 만든다. 내장 건강을 잃은 이가 남의 대변을 이식받아 소생하고, 쓸모없는 잡균인 줄 알았더니 강력한 항생 효능을 발휘했다. 그러니 매사 섣부르게 예단하지 말고 겸손해지자고 다짐한다. 세상은 독불장군으로 살 수 없고, 발밑의 벌레, 흙 속 세균과도 어울려 공존해야 할 모두의 터전이란 점도 알겠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22/202005220379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