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바티칸의 화려한 관저 대신 방 한 칸짜리 방문자 숙소에 묵고 간소한 공동 식사를 한다. 방한한 교황이 소형 국산차를 이용하고, 경호 최소화를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황제와 왕들의 세속 권력과 겨루다가 또 다른 권력의 탑을 쌓아 세상 위에 군림했던 바티칸의 역사에 대한 처절한 자기반성의 산물이다. 낮은 데로 임하기는커녕 높다란 종교 권력의 성(城)을 쌓아 왕 노릇 하는 한국의 종교 지도자들과 대조된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이끈 것은 '무너진 나의 나라를 다시 세우라'는 예수의 계시(啓示)였다. 정점에 이른 중세의 교회 권력 안에서 사랑과 평화를 실행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기실 붕괴하고 있었다. 팽창 일로였던 한국 종교계도 안에서부터 무너져가고 있다. 종교가 세상을 정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세상이 종교의 부패와 종교인들의 타락을 걱정하는 지경이다. 오직 종교 지도자들만이 그 사실을 외면한다. 오늘의 한국 종교가 쇠락(衰落)하는 것은 성직자와 신자(信者)들의 삶이 자신의 종교를 증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황에게 열광하는 한국의 종교인들은 '무너진 예수(부처·알라)의 나라'를 자신의 삶으로 일으켜 세울 것인지 응답해야 한다. 여기서 성 프란치스코의 일화가 중요하다. 거상(巨商)의 아들이었다가 회심(回心)한 청년 성 프란치스코가 집안의 귀한 물건들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자 근심에 잠긴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상속권을 박탈해달라고 아시시 시청에 제소한다. 시청 정문 앞에서 성 프란치스코는 팬티를 포함한 모든 옷을 벗어 아버지에게 돌려준다. 육신의 아버지를 떠나 하늘의 아버지께로 나아가겠다는 언약이었다. 그는 무소유와 사랑을 온몸으로 구현해 빈자들의 친구로 살았다. 44세 나이에 죽는 순간에도 허례허식을 거부한 채 맨 땅바닥에서 임종했다. 한없이 낮은 데로 나아간 사람이었다.
한국의 종교 지도자들은 세상을 가르치려 하기 전에 먼저 소득세부터 내야 한다. 궁궐 같은 성전(聖殿) 건축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자기 종파에 쌓아놓은 재산을 소외된 사람들과 사회로 돌려보내야 한다. 성직자들은 자신들의 호의호식(好衣好食)을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민중이 그토록 사랑하는 까닭은 그가 민중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무릇 모든 믿음은 믿는 자의 삶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프리미엄조선 윤평중 컬럼에서]